[7월 135호] 기록을 통해 원도심을 거닐다

기록을 통해 원도심을 거닐다

희망의 책 대전본부 조성남 이사장

 

 

 


 

삶의 궤적을 나타내는 기록

중구문화원은 지난 5월 《은행동 이야기》를 발간했다. 희망의책 대전본부 조성남 이사장이 《선화동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로 집필한 대전중구문화원 향토자료집이다. 조성남 이사장은 대전에서 태어나 학교에 다니고, 졸업한 이후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직업 덕분에 기록은 습관처럼 몸에 배었고,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오랜 버릇처럼 이어 온 기록은 도시에 대한 애정으로 번져 나갔다.
“어쩌다 보니, 대전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돌아보면 나는 대전에서 잘 먹고, 잘 살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이 도시를 위한 무언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괜한 의무감일 수 있지만. 이 도시는 나만이 아니라 이웃과 내 가족이 살아갈 곳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평생 기록하는 일을 했어요. 그래서 이 도시를 위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조성남 이사장은 2003년부터 대전중구문화원 14·15·16대 원장을 역임했다. 대전중구문화원에서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향토문화자료24집 《대흥동 이야기》를 발간했다. 구본미 교수가 집필을 맡은 《대흥동 이야기》는 대흥동 옛이야기와 지역 인사를 추억하는 내용을 담았다. 대흥동 이야기를 시작으로 시리즈 제작을 계획했다. 임기를 마친 후 향토자료집 집필을 본인이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선화동 이야기》 제안이 왔을 때 망설였지만, 원도심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밀도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도심은 대전의 중심지로서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전을 연구하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기록과 연구가 쌓이면 ‘대전학’으로 확대할 수 있겠지요. 더 늦기 전에 지역을 기록하는 작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전시 자체에서도 노력이 필요한 일이죠. 시의 지원이 없다면 사실상 어려운 일이에요. 기록과 역사는 인간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가늠할 수 있어요. 과거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화동 이야기》와 《은행동 이야기》는 원도심 활성화와 역사성에 주목했다. 조성남 이사장은 “원도심이야말로 대전의 역사이며 뿌리고 또 대전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장소”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원도심의 역사성에 주목한 이유는 현재 대전의 지리적, 환경적 상황 때문이다. 대전은 인구가 줄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모두가 예상했던 결과다. 인근 세종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KTX 호남선 분기점이 오송으로 바뀌면서 교통의 요충지라는 장점도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가 가지고 있던 장점이 다른 지역으로 분산하기 시작하면서 당연한 수순처럼 도시는 침체기를 겪고 있다. 조성남 이사장은 “지금이 잠시 멈춰서 앞으로 이 도시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이야기한다.

 

도시의 활력을 불어 넣는 기록

현재 은행동은 대흥동성당 건너편부터 중앙로역 네거리에서 목척교, 중앙교에 이르는 원도심과 그 반대편에 대전천을 끼고 있는 목척시장 일대로 나뉘었다. 《은행동 이야기》에서 조성남 이사장은 은행동을 ‘대전의 명동’이라고 이야기하며 은행동의 역사는 어쩌면 대전의 ‘살아있는 상업의 역사’라고 이야기했다. 
은행동은 대전 사람에게 주로 ‘시내’로 통한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은행동을 나가는 날은 왠지 소풍 가는 기분을 안겨 주기도 했다. 괜스레 멋을 내고 가야만 할 것 같은 장소였고, 그 당시 유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현재는 유명 SPA브랜드가 자리한 밀라노21이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아이돌들이 팬 사인회를 진행하기도 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는 친구와 함께 연예인을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한참을 서 있다가 운 좋게 사인 한 장을 얻기도 했다. 대전에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은행동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해 본다.
“원도심은 추억과 기억이 참 많은 동네입니다. 지금 스카이로드와 대전극장 통 사이에 미락이라는 일식집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부터 영업했던 곳이에요. 신문사에 입사한 1977년에도 유명했었죠. 사람이 항상 붐볐어요. 대전극장통 제일극장 골목에는 서울튀김센터도 있었어요. 동료들과 막걸리 한잔하며 시간을 보낸 곳이에요. 그때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지만, 안타깝기도 하죠.”
조성남 이사장은 《은행동 이야기》에서 대전 은행동의 일제 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를 철저한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책에 담아냈다. 취재를 위해 은행동 곳곳을 누볐고 이안경원, 성심당, 한밭복싱체육관 등 그 자리를 오랫동안 지킨 사람을 만나 인터뷰도 진행했다. 그들의 기억 속에 있는 은행동의 모습과 사연이 《은행동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데도 아쉬움은 남는다. 지역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집필한 자료집인 만큼 더욱 풍성하고, 전문적으로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
조성남 이사장이 수많은 취재와 기록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사실 확인’이다.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철저히 사실을 기반으로 한 기록을 남기려고 노력했다. 그는 오랜 신문이나 기록을 소중히 간직한다. 쉽게 무언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기록하는 사람의 습성과도 같다. 조성남 이사장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문화원이나 박물관 등에 있는 자료를 많이 참고한다고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 기록해 둔 수첩을 보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기도 한다. 막상 무언가를 쓰려고 할 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머뭇거리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보관해 둔 기록만큼 좋은 자료는 없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를 진행한 이후에 인터뷰 내용도 다시금 확인한다. 기억이라는 것이 본래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조사한 자료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과정 역시 조성남 이사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정 중 하나다. “결국 모든 기록은 다시 해석되는 것”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조성남 이사장은 현재의 작업을 기반으로 ‘대전사’를 기록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쉽지 않겠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한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조성남 이사장의 모든 기록은 거창하고 특별한 이유에서 시작한 일은 아니다. 내가 잘살아 온 이 도시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자신의 기록과 자료를 통해서 앞으로 대전을 어떤 도시로 만들어 나갈지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 침체기로 접어든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도 있다.  
“프랑스 파리는 현재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도시죠. 현재는 국가보다 도시가 특색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시대잖아요. 대전은 충분히 잠재력이 있는 도시예요. 대전에서 사상가,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경쟁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그 도시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죠.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중요하니까요. 원도심이 가진 역사와 특색을 살려서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사진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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