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5호] 옛것보다 새것이 나으니 그건 당연한 거야

옛것보다 새것이 나으니

그건 당연한 거야

김내과 김창국 씨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편인데, 심한 독감에 걸렸었다.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건물을 헐고 다시 올리기를 반복하는 대흥동과 은행동, 그리고 이 둘을 가르는 대로변에서 유난히 우뚝 솟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일대에서는 흔치 않게 층층이 병원이 들어선 건물 1층에 김내과가 자리한다. 입구에 들어서자 어릴 적 자주 드나들었던 옛 병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진료실에서 김창국 씨를 만났다. TV만 틀어도 낯선 병명이 난무하는 시대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아플 수 있다는 듯이 무던하게 진료를 보는 그를 보며 의사라는 무게에 초연해진 그의 지난날들이 궁금해졌다.




갑작스런 가족의 병이
삶의 방향을 결정했다

김창국 씨 앞에 앉은 환자라면, 누구든 공통된 질문을 듣는다. “주사 맞으실 거예요?” 어떤 병이든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진료 끝에는 언제나 같은 질문이 이어진다. 부모의 손을 잡고 내원한 아이 환자도 이 질문을 피해 갈 수 없다. 부모가 아무리 주사를 놓아 달라 말해도 환자는 아이이니, 환자의 대답에 따라 유무가 결정된다.
“아무리 내가 전문의여도 환자 의견을 존중해야죠. 아이도 저마다의 생각이 있는데, 그 의견도 존중받아야 해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김창국 씨는 지난 1974년에 의사면허를 취득했다. 1980년에 병원을 개원했으니 이곳에서 환자를 돌봐 온 지 올해 38년째가 됐다. 벌써 40년이 다 되어 가니 누군가의 인생만큼 한 직업에서 종사한 셈이다.
처음부터 의사가 되려 했던 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기계 만지는 걸 좋아하고 손재주도 제법 좋아 학창 시절에는 공대 진학을 꿈꿨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급작스레 큰 병을 얻으면서 미래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교육자 집안에 누님 두 명 모두 교사로 일하고 있었으니 집안 형편은 제법 넉넉한 편이었다. 하지만 아직 의료보험과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다 보니, 큰 수술이 집안 경제에 타격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등학교를 휴학하고 스스로 학비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흙을 날라 둑을 만드는 일처럼 몸을 써서 하는 일이라면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며 지내는 날도 많았다. 학비 정도를 마련해 다시 학업을 시작했고, 다행히 큰 탈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할아버지 병 때문에 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 중 누군가가 의료계에 종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족을 돌볼 수 있잖아. 그래서 공대 대신 의대에 진학했죠.”


30년이 넘으면
달인이 된다

지금과 달리 김창국 씨가 처음 병원을 개원하던 시절에는 병원 안에 사택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환자가 있으면 24시간 동안 진료를 봐야 하니 낮밤 없이 진료하는 게 당연했다. 업무 시간이 지난 늦은 밤에도 누군가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면 졸린 눈을 비비고서라도 환자를 돌보는 게 의사의 역할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일하는 거 꿈도 못 꿔요. 환자도 의사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됐으니, 방어 진료하는 의사도 많지. 사회 전체에 신뢰가 많이 깨졌어요.”
시간이 흐르며 예전 모습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대흥동 일대가 변했다. 도시가 변하는 속도만큼 의료계의 모습도 변했다. 날이 갈수록 의료 기술은 발전하고 있는데, 반대로 의사와 환자의 신뢰는 사라져 가니 섭섭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요즘 의사들 나보다 잘하지. 의료 기기도 얼마나 좋아져요. 변하는 걸 따라잡으려면 이 나이 됐어도 열심히 공부해야 해요. 의사는 환자를 위한 종이 되어야 하잖아요. 아픈 사람 도우려 어렵게 의사 됐는데, 그 정도 노력은 해야죠. 옛것보다 새것이 나으니 그건 당연한 거예요.”
올해 초에만도 학술 자료 세 박스를 폐기처분 했다고 말하는 김창국 씨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병원을 개원한 시기부터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지금까지, 오랜 시간 같은 일을 반복한 김창국 씨는 지난 자료를 정리하고 새로운 일을 익히는 게 자연스러운 일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한 직업에서 30년 넘게 일하면 그 직업에서 달인이 되죠. 대학교수들은 보통 한 장기가 자기 전공이에요. 갑상선, 췌장 이렇게요. 그런데 우리는 전체 다 해야 하니까 공부 안 하면 금세 구닥다리 돼요. 끊임없이 공부하고 현장에서 환자들 만나다 보면 자연히 달인되는 거죠.”
김창국 씨가 생각하는 의사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은 오랫동안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인이 될 정도로 오랜 시간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하고 싶은지 물었다. 김창국 씨는 다시 한번 솔직한 말투로 “병원 안 되면 문 닫아야죠. 능력 있어야 하지 그거 없으면 그만해야죠”라고 말한다.
“일단 병원 운영되고 직원들 먹고 살게끔만 되면 계속해야죠. 목숨 붙어 있으면 계속하는 거지 다른 이유가 뭐 있어요. 입을 달고 나왔으니 해야죠.”




글 사진 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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