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5호] 춤이 좋아 추고, 춤이 좋아 다시 일어선다

춤이 좋아 추고,
춤이 좋아 다시 일어선다

허은찬(SSEN)무용가



삐익- TV 화면조정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무대 뒤에서 관객석을 넘어 무용수들이 무대로 기어 나온다. 영화 <링>의 한 장면처럼 괴기스럽다. 무대에 선 무용수들은 한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그 안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 한 명. 그리고 남자가 손동작 하나로 조종하는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등장한다. 남자가 걸으면 여자도 따라 기어가고, 남자가 손을 앞으로 뻗으면 여자도 앞으로 엎어진다. 뒤에 서 있는 댄서들도 여자의 몸짓에 반응하며 동작을 반복한다. 마치 컴퓨터 속 마우스 커서와 프로그램 아이콘 같은 느낌이다. 남자가 손을 빠르게 움직이면 여자도 바삐 몸을 던진다. 뒤에 댄서도 바빠지면서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동작이 중구난방이다. 빠르게 동작을 반복하던 여자는 화가 났는지, 그만하라고 소리치며 벌떡 일어선다. 관객이 웃음을 터뜨린다. 잘은 몰라도 이게 현대무용인가 싶을 정도다. 경쾌한 쇼 하나를 본 느낌이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약간의 기침 소리, 박수갈채만 존재하는 객석이 웃음으로 들썩인다. 관객이 쉽게 이해하고, 어두운 공연장에서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무대. 그게 바로 허은찬 무용가가 가진 매력이자, 계속해서 가져가고 싶은 무대가 아닐까.




스트리트 댄서에서
딴따리스트로

허은찬 무용가는 원래 백댄서를 꿈꾸는 스트리트 댄서였다. 소속된 팀도 있었고, 인기도 많았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수업을 듣기보다는 밖으로 돌았다. 교수님의 핀잔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현대무용에 깊이 발을 들인 건, 한 교수님의 현역시절 공연 영상을 보고서였다. 다이나믹하고 폭발적인 힘을 가진 무대였다. 그 영상 하나로 허은찬 무용가는 현대무용에 빠졌고, 폭발적인 교수님의 공연 방식은 지금 허은찬 무용가의 테크닉적 기반이 됐다.
허은찬 무용가는 스트리트 댄스에서 현대무용으로 넘어 왔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가장 큰 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이었다. 그는 자신을 ‘딴따리스트’라고 소개한다. 자신이 직접 지은 말로, 딴따라와 아티스트를 합성한 단어라고 한다.
“현대무용 자체가 정형화되어 있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현대무용이 추구하는 철학은 자유이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생성하는 거예요. 현대무용이 나아가 컨템포러리 댄스로 진화했는데, 이 컨템포러리 댄스는 동시대에 행해지는 모든 것을 춤으로 수용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제가 가진 장점은 스트리트 댄스를 했다는 거예요. 관객과 소통하는 법을 알고, 어떻게 해야 관객이 신나는지 알거든요. 제 무대는 현대무용이 가진 철학적 요소와 소통이라는 스트리트 댄스의 장점이 결합한 공연이라고 할 수 있어요.”
허은찬 무용가의 말처럼 그가 올린 무대는 재미와 메시지가 적절히 녹아 있다. 그는 주로 무대 위에서 갑과 을, 공평하지 않은 사회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의 공연은 공연자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와 보는 재미가 알맞게 섞인 블랙코미디와 같다.
“우리 사회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회에는 늘 벽이 존재하고, 사람마다 벽의 높이가 다르죠. 이미 기회가 많았던 친구들은 계속해서 성공하지만, 소위 말하는 흙수저로 태어난 친구들은 진입장벽이 높아요. 그런 불만과 메시지를 춤으로 전달해요.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녹여 내는 편이에요.”
그가 무대에서 이끌어 가는 갑과 을의 이야기는 늘 일상에서 얻어진다. 단순히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바라보고 만드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디어는 친구들과의 술자리나 즐겨하는 숫자 배열 게임을 통해 따라온다. 같은 숫자를 반복하면서 점점 숫자가 커지는 과정을 사람의 성장과정과 동일하게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작업한다. 이전에 허은찬 무용가가 선보인 작품 <The Energy> 시리즈와도 비슷하다. 이 작품은 그가 즐겨하는 게임처럼 각각의 작은 구조가 반복되며 하나의 큰 구조가 되는 프랙탈 이론을 가지고 만들었다.
“일상에서 얻어지는 작은 것을 작품 소스로 사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지만 기본 철학은 늘 같아요. 포장만 다르고 내용물은 같은 거죠.”



절실함은 무대를 뜨겁게 한다

현대무용이 가진 기존 형식과 다른 것을 선보이는 허은찬 무용가의 무대는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현대무용 전공 대학생의 축제인 ‘생생 춤 페스티벌’에서도 허은찬 안무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연출과 무대로, 평론가의 눈에 들었다.
“무용계에서는 춤추는 사람이 날씬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어요. 당시 제 무대에서는 덩치 있는 친구가 메인에 섰는데, 이 일로 교수님과 마찰이 잦았죠. 제 춤은 관객과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에너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덩치 있는 사람은 무용계가 선호하는 것처럼 선이 예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안무를 구현할 때 큰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전 그 친구가 정말 필요했죠. 결국 교수님께 ‘한 번 보고 말씀하세요’ 라며 큰 소리치고 그대로 무대에 올렸죠 ”
허은찬 무용가는 당시 페스티벌을 계기로 평론가들의 눈에 들어, ‘크리틱 초이스 2016’ 무대에 섰다. 크리틱 초이스는 평론가가 선정한 안무가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하는 무대로, 젊은 안무가에게는 꿈의 무대인 곳이다. 지금껏 해 온 공연 중에 가장 긴장하고 기억에 남을 무대였을 만도 한데, 그가 뽑은 최고의 무대는 대전에서 진행한 ‘DNA 프로젝트’였다. 허은찬 무용가가 연출한 <소통, 침묵을 깨우다>는 젊은 예술가가 겪는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으로, 현대무용가와 첼리스트, 피아니스트, 장구 연주가가 함께 만든 무대였다.
“저는 함께 작품 하는 친구들과 늘 가슴 뜨겁게, 뭉클하게 무대를 만들고 싶어요. <소통, 침묵을 깨우다> 할 때가 그랬어요. 댄서들과의 유대감이 상당히 좋았거든요. 제 춤 테크닉 자체가 워낙 에너지 넘치다 보니, 조금 과격한 면이 있었어요. 공연 내용 중에 여자 무용수가 학대당하는 다소 폭력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예술가의 압박감이 극에 치달은 것을 표현하기 위한 장면이었죠. 위험한 장면이었고, 무리하는 것 같아 말렸는데도 그 친구는 ‘안 돼요, 해야 해요’라면서 몸 던져 연습하더라고요. 결국 그 친구 덕에 그 장면을 살릴 수 있었어요. 생각해 보면 결국 서로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함께 한 친구들 모두 비슷한 상황과 절실함이 있었거든요. 무대가 끝나고 그 친구들과 끌어안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허은찬 무용가는 춤을 추면서 재미없는 장르, 돈 못 버는 직업이라는 편견과 끊임없이 싸웠다. 실제로도 적은 수입으로 몇 달을 어렵게 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춤을 추는 이유가 무엇이냐 물으니, 그저 웃으며 ‘좋아서’라고 답했다. 순간 그가 지은 미소와 ‘좋아서’라는 답변은 인터뷰가 끝나고 한참 뒤에도 주변을 맴돌았다. 어찌 보면 상투적이고, 너무 간결해 무성의해 보일 수 있지만, 허은찬 안무가에게는 정말 그 답이 전부였던 것 같다. 단지 좋아서 시작했고, 무너질 정도로 힘들었던 춤이었지만, 좋으니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허은찬 무용가는 단지 춤이 너무 좋아 무대를 만드는 사람이다.
춤은 자율성과 해방감을 가진다. 누군가는 춤으로 인해 뻣뻣한 사회에서 잠깐의 탈출을 경험한다. 그 해방감은 지친 마음에 뜨거운 힘을 주입한다. 허은찬 안무가 역시 춤을 통해 느끼는 희열에 계속해서 춤춘다. 춤을 추고 싶어 공연을 하고, 무대를 만든다. 허은찬 안무가에게 춤이란 자신이 열정적으로 멋있게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의 연속이 아닐까. 


  이주연
사진  이주연, 허은찬 제공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