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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5호] 곰팡이 같은 음악을 합니다
곰팡이 같은 음악을 합니다
밴드 형제공업사
김진수(피아노), 천종성(색소폰), 김동석(드럼), 김진일(베이스), 심영국(보컬)으로 이루어진 밴드 ‘형제공업사’. 밴드 이름처럼 이 남자들 참 남자답다. 반면 노래는 참 다정하다. 아니 다정하다기보다는 친근함에 가깝다. 들어도 잘 모르겠는 재즈를 참 쉽고, 재밌게도 풀어냈다. 재밌고 친근하고도 편한 느낌에 괜히 주저리주저리 두서없는 말을 던지고 싶다. 동네 형은 없지만, 만약 있다면 형제공업사와 비슷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런데 노래만 듣고 만난 형제공업사는 생각보다 과묵했다. 그러면서도 툭툭 농담을 던지는 게 형제공업사의 매력이구나 싶다. 모든 멤버가 꼭 함께해야 한다며, 저녁 시간에 약속을 잡았다. 영국 씨는 춘천에서부터 대전으로 달려왔다. 슬슬 멤버들이 모이기 시작할 때, 영국 씨는 대뜸 “토마토에 남는 자리 없나요?”라며 눈을 반짝인다. 장난이겠거니 하며 웃어넘겼더니, 진수 씨가 진지하게 “우리가 열심히 활동하려면 얘가 대전으로 와야 해요”라고 말한다. 이 사람들 진짜다. 장난기 가득하다가도 갑자기 진지한 이 남자들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싶다. 참 종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형제공업사
알고 보니 진수 씨와 진일 씨는 형제다. 둘 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해왔고, 함께 형제공업사를 결성했다. 지금은 일도 함께하고 있다. 형제가 함께 시작한 밴드여서 ‘형제공업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두 형제가 시작한 형제공업사에 남자 세 명이 더 모여 지금의 형제공업사가 됐다. 진일 씨는 “둘이서 활동하기에는 조금 힘에 부쳐 한 명씩 들이다 보니, 어느새 다섯이 되었다”고 말했다. 명확하게 정할 수 없이, 그냥 흘러왔단다. 충청도 사람들다운 대답이었다.이들 중 가장 뚜렷한 계기가 있는 사람은 아마도 영국 씨일 것이다. 영국 씨는 원래 국악을 전공했는데, 군악대에서 진수 씨를 만나 재즈에 빠졌다고 한다. 재즈에 매력을 느낀 영국씨가 밴드에 합류하길 바랬고, 그렇게 밴드에 새 멤버가 생겨 났다. 영국 씨는 국악을 했던 탓인지,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다. 국악과 재즈의 만남, 동서양의 만남이라고 하면 너무 간 건가. 어쨌든 형제공업사 보컬 곡 중 <얼룩>이 영국 씨의 목소리 색이 가장 잘 묻어난다. 참고로 이 노래는 음원보다 라이브가 최고다.
<얼룩>의 절절한 가사는 사람에 대한 미련을 얼룩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한때 사랑했던 연인과의 행복했던 추억이지만, 이별과 동시에 그 추억은 얼룩이 된다. 우리는 사랑이 떠나간 후, 천천히 얼룩을 하나하나 지워 나가며 이별을 맞이한다. 얼룩을 지우는 동안 추억과 미련도 함께 씻겨 나간다. 스스로 지워 내는 시간, 이 시간이 진짜 이별의 순간이다. 그런 슬프고 버거운 감정이, 영국 씨의 허스키하고 묵직한 목소리를 통해 읊어질 때면 마음 한쪽이 저릿하다.
멤버 모두 제각각 물 흐르듯 합류했지만, 이전부터 긴 시간 알고 지내며, 함께 연주했다. 다들 10년 이상은 알고 지낸 두터운 사이였다. 함께 활동하면서 부딪히거나 어려운 점은 없었냐는 질문에 내내 말이 없던 동석 씨가 “회식 메뉴 정할 때가 가장 충돌이 많아요”라며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 동석 씨는 회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회를 좋아하지 않는 멤버가 있어 매번 회식 메뉴가 고기라고 한다. 진수 씨가 선심 쓰듯 횟집 한 번 가자고 말하자, 동석 씨는 냉큼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기회를 붙잡는다.
그간 회식 메뉴에 불만을 품고 있던 동석 씨의 대답으로, 멤버 간의 충돌 에피소드 질문이 어느새 회식 메뉴 선정 이야기로 흘러갔다. 한참 신나게 횟집 이야기를 나누다, 지켜보던 막내 영국 씨가 “크게 충돌은 없었다”라며 이야기를 급하게 정리했다.
영국 재밌어요, 저희. 멤버 중에 특출하게 성격이 센 사람이 없어서 부딪힐 일이 없어요. 다들 오래 봐서인지 서로 합도 잘 맞고요.
종성 눈치가 빠르죠. 연주하다가 한 명이 틀려도, 눈치가 그냥…
진수 그런 건 말하면 안 되지. 좋은 것만 말해.
영국 아니에요. 인터뷰는 솔직하게 해야 해. 제 생각에는 솔직히 합주를 아주 많이 하는 팀은 아니에요. 그런데 워낙 오래 했으니까, 누가 틀려도 잘 맞춰 줘요.
진수 저는 합주에서 드럼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동석 형님이 중심을 잘 잡아주죠. 누군가 틀리면 알아서 잘 맞춰 줘요. 저희는 동석 형님이 다시 중심을 맞춰 주면 금세 다시 페이스를 찾아요. 틀려도 잘 모를 정도예요.
영국 사실 제가 제일 많이 틀려요. 막 박자 못 찾아 들어가고, 간주 이미 끝났는데 노래 안 하고 서 있고. (웃음). 그럼 눈치 보고 있다가 형들이 한 번 더 연주해 주면 들어가고 하죠. 그런 식으로 그냥 아름아름 넘어가고 배려해 주니까, 별로 싸울 일이 없어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때, 어땠냐는 질문을 했다. ‘그냥 뭐, 재밌었죠’, ‘우리끼리 그냥 놀다가 왔어요’ 등의 짧은 대답이 이어졌다. 이들에게 ‘그냥’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대화 필수 단어일지도 모른다. 한 무뚝뚝 하는 나도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들에겐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팔짱을 끼고 심드렁하게 앉은 형제공업사의 모습은 마치 ‘대화는 짧고, 굵은 게 최고!’라고 외치는 것 같다.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는데, 그냥 형제공업사의 색인가 보다.
함께 장수하며
음악 하는 보이 밴드
형제공업사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정보란에 ‘곰팡이 같은 음악을 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집안 한구석에 자리 잡은 곰팡이는 웬만해서 잘 없어지지 않는다. 걸레로 벅벅 문대도 자국을 남기고, 어느 샌가 점차 영역을 확장한다.
요 며칠 동안 형제공업사의 노래를 무한 반복하는 나로서 크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맞아, 무언가 곰팡이 같은 면이 있어. 간신히 지워 놓은 곰팡이가 또 생긴 건 아닌지 벽을 힐끗대듯 다른 노래를 잘도 듣고 있다가도 ‘갑자기 듣고 싶네’하고는 형제공업사의 노래로 다시 돌아가곤 한다.
진수 씨는 그런 음악이 하고 싶단다. 곰팡이처럼 없어지지 않고, 형제공업사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감염시키고 싶은 마음에서 적은 소개다.
하지만 이제 아무 걱정 없이 음악만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잠시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형제공업사는 금세 돌아왔다. 노래 <그곳에 서 있다>는 진수 씨가 음악과 잠시 떨어져 있을 때 무대를 그리워하며 만든 곡이다. 종성 씨의 색소폰 소리가 진수 씨의 그리운 마음을 더 진하게 만든다. 그 마음의 크기가 가늠은 안 되지만, 정말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래도 늦지 않게 돌아와 좋은 노래를 들려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진수 씨는 지금이 형제공업사에게 있어 마지막 불꽃을 피워 내는 시기라고 말한다. 사실 마지막 불꽃이라니 조금 아쉽다. 그래도 형제공업사라면 그 불꽃이 꺼지지 않게 열심히 부채질하며 키워 낼 수 있을 것 같다.
진수 음악으로 먹고사는 건 어려운 일이죠. 나이를 먹으면서 삶의 무게도 더 무거워지고, 아무래도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다 보니 아무것도 없었을 때보다는 제약이 많아졌죠. 그래서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음악보다는 일에 더 집중해 보기도 했는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제 인생을 놓고 봤을 때 후회할 것 같았어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내에게 말하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죠. 이 자리를 빌려서 기다려 준 팀원에게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고, 꼭 형제공업사를 메이저로 올리고 싶어요. 이제부터 진짜 전투 준비에 들어갑니다. 멤버들도 정신 차리고, 다시 멱살 잡고 끌고 갈 테니 도와주세요!
영국 음악 하는 사람들은 거의 비슷해요. 힘든 건 가난이고, 편견이고요. 좋은 건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거예요. 그건 누구한테 물어봐도 비슷할 거예요. 그러니, 토마토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일하고 싶습니다!
곰팡이 같은 음악으로 큰 무대에 선 것도 여러 번이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뮤지스땅스, 홍대 클럽에반스 등 참 굵직하다. 온스테이지에서는 유명 재즈 아티스트와 함께, 한 무대에 섰다. 진일 씨는 긴장되고 많이 떨렸지만 오랜만에 좋은 환경에서 연주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말한다. 이렇게 오래오래 함께 공연하는 밴드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진일 제가 생각하는 형제공업사의 계획은 모든 멤버가 다 돋보이는 보이 밴드가 되는 거예요. 보이 밴드는 너무 그런가? 아무튼 장수하면서 같이 늙어 가고 싶어요.
진수 아까 말했던 것처럼 우리 형제공업사는 진짜 메이저로 갈 겁니다. 멤버들에게 이때까지 음악 하면서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을 꼭 하고 싶어요. 올해 안에 꼭 메이저로 갑시다!
영국 올해 안에? 음력으로 해. 그래야 내년 2월까지 늘어나잖아.
형제공업사는 마치 노래 <콩깍지> 같다. 끈적하고 소울이 흐르다 못해 넘칠 듯한 R&B에, 피식 웃음 터지는 어이없는 가사를 끼얹었다. 감성 재즈에 한창 몸도 마음도 녹아 내렸는데, 알맹이가 너무 달라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툭 던져 놓고, ‘이게 우리야’하는 느낌이랄까. 가사만 보면 ‘이게 무슨 노래야?’ 싶지만, 이게 바로 이들이 가진 색깔이고 알맹이다. 노래가 감성적이라고 사람까지 친절해야 할 이유는 없다.
글 사진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