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5호]길이 간직한 기억을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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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간직한 
기억을 더듬다.

유성구 신동 '회화나무길'
 


산성에 오르는 길은 널찍하다. 가을을 지나며 낙엽이 차곡차곡 쌓였지만, 일정한 폭으로 길게 이어지는 바큇자국까지 덮지는 못했다. 무거운 무게로 내리누르며 임도를 지났을 자동차가 만들어 둔 자국일 게다.
산자락 마을 끝에서 천천히 걸어 올라도 20여 분 남짓이면 산성에 닿는다. 겨울이라 잎을 모두 떨군 나무 사이로 성돌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전날 내린 눈이 모든 것을 감췄다. 산 정상부에 널찍하고 평평한 형태를 보며 사람의 손길만 느낄 뿐이다. 백제시대 손길이다.

소문산성은 둘레 350m 가량으로 해발 200m 산 위에 축조한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처음부터 돌로 쌓은 산성이 아니라, 흙으로 다져 성을 쌓았고 그 뒤에 돌로 쌓은 부분을 추가한 것으로 본다. 산성 이름을 놓고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쌓아 소문산성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소문산성 주변에는 병사가 주둔했던 곳으로 추정하는 ‘둔곡’이라는 지명이나 군인이 말을 달리고 훈련하였던 곳이라 해서 ‘다릿골’이라는 지명이 전하고 있다. 이곳 소문산성과 그 주변이 군사지역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방금 지나쳐 온 마을이 천 몇 백 년 전에는 군인이 요란스럽게 훈련하고 영토를 지키기 위해 눈에 불을 켰던 곳이다. 신기하고 궁금하다. 일반적인 ‘호기심’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것은 ‘지구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문자, 이미지, 영상으로 남거나 혹은 삶이 유효한 기간 안에서만 제한된 양을 머릿속에 저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편견이다. 사람만이 기억하고 사람만이 그 기억을 의미 있게 반추하며 현재와 미래에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특정 시간, 한 지점에서 벌어진 현상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공간이 기억으로 담아 둔다. 그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 풍광을 만든다. 공간이 담아 둔 기억은 인류가 사용하는 다양한 소통 도구를 통해 메시지를 전해 오지는 않지만, 우리가 지닌 특정 감각을 톡. 톡. 건드린다. 그 자극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훼손하고, 콘크리트로 꽉꽉 막아 세운 공간보다는 시간의 흐름을 어지간히 간직한 채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공간일수록 그 자극은 더욱 강렬하다. 자극을 강렬하게 받는 공간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우리를 다시 순수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문산성 꼭대기에서는 나뭇가지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금강과 건너편 매포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시절, 이곳에 산성을 쌓기로 결정한 전략가의 심중이 읽힌다.
이곳에서 강과 주변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살폈을 당시 초병도, 어느 순간, 맑게 개인 하늘 아래 쨍하게 얼어붙은 구름에 눈길을 빼앗겼을 것이다. 그 얼어붙은 구름 사이로 고향 땅과 그 땅에 두고 온 그리운 사람을 하나둘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구름을 뚫어져라 쳐다보면 그냥 그립다. 한겨울 쨍하게 얼어붙은 구름은 더욱 그러하다.

‘길’도 지구 위의 공간이다. 끊임없이 오가거나 그 주변에 사는 수많은 생명체가 만들어 낸 이야기를 기억으로 담고 있다. 바람이 전해 준 머나먼 곳 이야기까지 더해졌다.
그렇다고 길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들려주지는 않는다. 그 길 주변에서 삶을 풀어낸 이들이 다음 대에서 또 다음 대로 이어 가며 들려주었을, 그 길 위에서 펼쳐졌던 단편적인 이야기를 우연한 기회에 접하거나 산성이나 서낭당, 작은 표지석 등 이야기의 실마리가 되어 줄 무엇인가를 보며 상상하는 것이 전부다. 나머지는 감정을 톡. 톡. 건드리는 자극에 집중해야 한다.

어야 할 길이 전하는 이야기의 중요한 실마리가 될 소문산성에 오르려면 길에서 잠시 벗어나야 한다. 왕복 1km를 걸어갔다 다시 돌아와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곳에서 길이 담고 있을 이야기 일부를 발견할 수 있다면 들렀다 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대전시 유성구 신동 녹골마을에서 금탄동까지 이어지는 길은 대략 4km 정도다. 이곳은 ‘세종~유성과학길’의 일부 구간이면서 ‘회화나무길’이라고도 부른다. 이 길은 녹골마을에서 소문산성 부근까지 올라붙는 길만 오르막이고 나머지 길은 계속 완만한 내리막길을 유지한다. 돌아오는 길은 반대로 완만한 오르막길이라는 얘기다. 경사로는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 유순하다. 산속에서 이런 길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내딛는 걸음에 신경을 덜 쓸 수 있는 길은 여유를 준다. 그 여유 안에서 ‘사유’할 수 있는 틈이 벌어진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신동에 가면 녹골마을이 있다. 새뜸, 양지편과 함께 신동마을을 구성한다. 그중 녹골마을은 가장 안쪽 마을이다. 이곳은 소문산성 아랫마을이기도 하다.
산쪽으로 붙은 녹골마을 끝자락에서 잠깐 오르면 소문산성 인근에 도달한다.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거대한 크레인으로 단위 부품을 조립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산성 주변에 설치하는 송전탑이 영 불편하다. 군사적 목적을 위해 쌓은 산성이나 지금 전력 공급을 위해 설치하는 송전탑이나 우리 필요에 의해 설치하는 인공물이라는 점은 매한가지일 텐데, 성은 불편하지 않고 송전탑은 불편하다. 


흙과 돌’이라는 요소와 철과 콘크리트라는 재료가 지닌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낱개로 가지고 올라온 철 구조물을 조립하는 인부 대여섯 명과 갑자기 등장한 길을 걷는 사람 사이에도, 산성과 송전탑 사이에 불편한 긴장감이 흘렀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으로 경계를 침범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며 곁을 지나친다. 경계를 더욱 조밀하게 만들고 손에 피를 철철 흘리며, 그 밖으로 타자를 끊임없이 밀어내려는 욕망도 이 시대가 만들어 낸 규칙이다. 원하지 않는 경계 만들기. 
소문산성에서 내려오면 짧은 소나무가 만들어 놓은 터널을 제일 먼저 만난다. 여전히 푸르름을 잃지 않았지만 한여름 밝게 빛나던 그 푸른빛과는 사뭇 다르다. 겨울잠에 들어간 반달곰처럼 깊고 무거운 숨을 천천히 내쉬느라 그런지 소나무가 지닌 푸른빛도 어둡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소나무 아래를 걸을 때는 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소나무 잎이 만들어 주는 폭신함을 느껴야 한다. 물기를 잔뜩 머금어 살짝 미끄럽지만 한 세상을 살아 낸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봉긋하게 솟아오르려 산자락을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보낸 그곳 허리쯤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완벽한 고요가 찾아온다. 공간에 따라 완벽한 침묵은 공포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완벽한 평화로움이다. 

 

탄성을 자아내는 어머어마한 풍광 따위는 없다. 잎을 떨군 나무와 얼어붙은 하늘, 얼어붙은 구름이 길 위에 얹히고 간혹 화들짝 놀라 요란스럽게 푸덕거리는 고라니가 정적을 깰 뿐이다. 꿩 한 마리가 힘겨운 날개짓으로 그 무거운 몸뚱이를 띄우며 파란 하늘 풍경에 선을 그린다. 낯 선 침입자에 놀라 날아가면서도 그리 천천히 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보인다. 한계를 받아들인 꿩의 표정은 당황스럽기보다는 의연하다. 가진 것도 없으며 끊임없이 저항하는 세상의 모든 것은 그러하다. 그것은 지배자에게 견디기 어려운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절반 정도 내려가면 좌측으로 금강이 흐른다. 산길을 걸으며 이렇게 가까이에서 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물살이 거침없다. 하늘에는 솔개인지 황조롱이인지 눈으로는 확인이 어려운 새 몇 마리가 배회한다. 그 곁을 까치 한 마리가 유유히 비행하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는 모습에 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겁 없는 까치에 당황한 것인지, 배가 불러 사냥할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날개를 활짝 펴고 유유히 활공하는 모습을 볼 때 맹금류임에는 틀림없다.

강쪽으로 심어 놓은 회화나무는 대부분 그 잎을 모두 떨구었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바짝 마른 잎을 잔뜩 틀어쥔 채 놓아 주지 않은 나무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회화나무가 녹색 나뭇잎을 풍성하게 간직한 여름날의 이곳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다르리란 걸 가늠케 한다. 강과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바짝 마른 회화나무 잎을 흔들며 삭마른 소리를 낸다. 겨울이 내는 소리다. 너무 건조해서 손가락 끝만 스쳐도 바스라져 무너져 내릴 듯한 위태로움이 느껴진다. 삭마른 나뭇잎이 흔들리며 내는 그 소리가 풍경에 미세한 균열을 반복적으로 일으킨다. 균열은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풍경을 분리한다.
완만한 경사마저 거의 그 흔적을 감추고 평평한 길에 도달하면 곧이어 출구다. 길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시작과 끝이 분명하기란 쉽지 않다. 섬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끝날 것이라 생각한 길이 다른 곳에서 뻗어 온 길과 연결돼 끊임없이 순환한다. 외따로 떨어져 한 점과 한 점을 연결한 선으로 존재하는 길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 점과 점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둔 것일 뿐 영속적일 수 없다. 그 길은 희미하게 사라지거나 어느 순간 다른 지점에 닿을지도 모른다. 길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거나, 급격히 다른 풍광에 직면하면서 마디를 만들어 낸다. 대나무가 자라며 마디를 만드는 것처럼 길도 자연스럽게 그런 마디를 형성한다. 여기에서 출구는 바로 그 또다른 한 마디가 끝나고 새로운 마디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산길을 벗어나면 지금껏 보지 못했던 농경지가 금강을 앞에 두고 펼쳐친다. 지난 가을 추수를 마치고 네모 반듯하게 갈무리한 볏짚이 네모나게 묶여 논다랑이 옆에 툭툭 던져졌다. 한해 노동을 매듭지어 놓은 마침표처럼 말이다. 

 


글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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