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4호] 1년쯤 늦게 가는 책방 일기

만유인력 책방 이야기

1년쯤 늦게 가는 책방 일기



4월호에 이어 책방 일기가 펼쳐집니다. 비가 내리는 오전에 이 글을 쓰고 있어요. 후텁지근하고 봄과 여름 냄새가 마구 뒤섞인 듯해요. 나무들은 건들건들 춤을 춥니다. 1년쯤 늦게 가는 책방 일기 한 번 열어 볼까요?


● 2017년 8월 17일 목요일
어제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 일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벌어지네.
몇 년 새 아니 몇 달 새 작은 출판물 세계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있다! 변화가! 많이!!
그런데도 활기는 너무 내향적인지 크게 느껴지지 않고 있다니 아쉬움이 많다.
아이들은 책방에서 ‘아따맘마’를 봤다. 불만합창단 2017년 가을, 일민미술관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 공동체 아카이브전 공연을 위해 조직된 합창단. 단원 모집공고를 보고 모인 스무 명 남짓한 사람과 한받이 저마다 불만을 얘기하고 그것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불만합창단 in 서울’이란 공연을 서너 차례 미술관 안팎에서 펼쳤다.
선율이 불만은 피아노 가는 거였고 로운이는 뛰놀지 못하는 거?!


● 2017년 8월 18일 금요일
오늘 토드 셀비가 쓴 《우리 집, 구경할래?》를 일독하다가 또 버스터 키튼의 〈일주일〉을 틀어 놓고 일독하다가 생각했다. 토드의 책은 뭔가 그럴싸한 사람들의 그럴싸한 이미지로 가득한데 키튼의 영화는 그 ‘그럴싸’가 얼마나 소시민에게 힘든 일인가 보여 주고 있어서 둘을 한꺼번에 보고 있으려니, 정말이지 세계의 부조화가 실감 나는 거였다.
둘 다 엄연히 이 세계. 서럽게 살아가고 스스럼없게 살아가고.
나는 서럽기만 한 것도 싫고 스스럼없기만 한 것도 싫고 그렇다.
아무도 안 오니까 시간이 남아돌아서 탁자 위에 여름 사과랑 한받의 옷으로 헛짓을 해 본다.


● 2017년 8월 19일 토요일
한받은 원주에 강의하러 가 버리고, 나 혼자 애 둘이랑 버티기 작전.
꽃 같은 애들이랑 지내는 아까운 시간을 버티는 식으로 허비하는 자신이 참 아깝다.
손님 하나 없다가 저녁 무렵 한 분 오셔서 음반이랑 책을 사가셨다.
저녁부터 한받이 일민에서 제안받은 불만프로젝트 단원들의 불만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다들 불만이 많았다.


● 2017년 8월 20일 일요일
월세 날.
돈이 모자라서 얼굴과 마음이 점점 그늘졌다.
로운이가 나를 보더니 “엄마 왜 웃음이 없어?” 해서 사정을 설명했다.
“모든 것이 돈으로 매겨져 있으니 힘들어. 엄마는 천국에 가면 싶다.”
그러니까 로운이가 내 몸을 잡으며 “엄마 조금만 여기 더 있음 안 돼?” 한다.
그러면서 자기 전 재산이 든 작은 깡통을 들고 온다. 선율이도 자기 전 재산을 들고 온다.
다 그러모아서 계산하고 통장에 남은 것까지 모으니까 어찌 한 달치 월세가 되었다.
우리가 전 재산을 그러모아서 만유인력에 보탰다.
이제 만유인력아, 앞으로 앞으로 힘차게 굴러가렴!

오후에 미혜 언니가 와서 베를린에 차린 한식당 ‘김치플래닛’ 컨셉에 맞는다며 《북조선펑크로커 리성웅》을 사 갔다.


● 2017년 8월 21일 월요일
하루 온종일 사람들이 들락날락.
《사랑해 아줌마》는 내가 살고 있는 만리동예술인주택 402호에 사는 정진미 님의 작품. 읽고 들으며 눈물이 났다. 진미 님이 쓴 시에 노래를 입혀 불렀는데 아줌마들은 누구나 공감할 얘기다. 이 마스터피스를 알아보고 이웃이 사 갔다. 그녀도 아줌마이며 엄마이다.
불만합창단 인터뷰 계속 진행. 곁가지로 만리동 걱정모임도 계속 진행. 이번 주부터 워크샵도 시작된다. 오가고 서로 만나고 공감하였으면. 서로에게 약손이 되어 주었으면.

순천 여행 중. 급속열차 안이다.
잊지 않기 위해 급속 단상요약. 방금 한받과 통화에서 오늘 손님은 없고 불만합창단 인터뷰가 줄줄이 이어졌다고 전해 들음.
구매가 없었구나. 그런데 왜 구매가 있어야 해? 이웃들은 책을 빌려 가는 곳이냐고 묻고 나는 사는 곳이지만 와서 보실 순 있다고 한다. 새삼 책은 왜 있고 서점은 왜 있나 하는 생각. 샘플은 마음껏 봐도 되지만 상품은 포장되어 돈 내야 볼 수 있음. 돈을 내야 내 것이 됨.
책을 빌려주려면 신용이란 게 필요해. 이 사람이 책을 갖다 줄 거라는 담보. 그럼 신분증이나 회원증 말고 자기한테 제일 중요한 걸 담보로 주고 빌려 가라면 어떨까. 책을 빌려 가려는 사람은 책을 갖고 싶진 않지만 책 내용을 읽고 싶은 사람일까.
책을 사려는 사람은 책을 어떻게 소유하겠다는 걸까. 우리 집 책장의 책들을 나는 소유하고 있을까. 진정한 의미에서? 다 읽지도 않고 다시 읽지도 않을 건데?

둘째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해서 생각 멈춤. 화장실행. 그새 전주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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