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4호] 버킷리스트 하나, 전주국제영화제

이주연 기자의 필름로드

버킷리스트 하나, 전주국제영화제






스무 살 무렵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던 적이 있다. 평소 영화를 좋아했던 터라 몇 없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영화제 관람하기’를 적어 넣었다. 다른 리스트 중에는 ‘영화제 자원봉사자로 활동해 보기’도 있었다. 리스트를 실행하고자 어느 영화제의 자원봉사자를 지원하기도 했다. 지원서에 자원봉사자가 되면 드넓은 들판에서 앞구르기를 하겠다며 큰 포부를 밝혔지만, 애석하게도 앞구르기는 지금까지 실행하지 못했다. 영화제 관람도 늘 핑계거리가 생겨 방문하지 못했다. 시간은 흘러, 올해 계획 중 하나로 영화제 방문을 적어 넣었다. ‘올해는 가야지, 진짜 가야지’ 하고 있던 찰나, 마침 전주국제영화제가 진행 중이었다. 이때다 싶어, 취재를 핑계 삼아 전주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1.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의 마지막 날, 하필이면 비가 왔다. 햇살 좋은 날 몸도 마음도 가볍게 떠나고 싶었으나, 날씨는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우비를 살까 하다, 우산을 쓰기로 했다. 전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전주국제영화제가 진행 중인 고사동까지 걸었다. 걷다가 마주치는 전주의 모습과 전주국제영화제를 알리는 현수막에 눈을 돌리며 여행 온 기분을 만끽했다.




2.


비가 와서인지 거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전주 돔으로 향하기 전 골목골목을 돌며 부푼 설렘에 바람을 넣었다. 폐막작을 보기 전에 영화 한 편을 더 보기로 했다. 연이은 매진과 애매한 시간으로 선택의 폭은 좁아, 고심 끝에 영화를 골랐다. 영화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영화 〈아이스크림과 빗방울〉은 단 한 컷 안에 74분의 러닝타임을 담아냈다. 마츠이 다이고 감독은 ‘영화답지 않은 영화, 연극답지 않은 연극 같은 것을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의 영화는 영화 같기도, 연극 같기도 했다. 영화 속 노래는 노래 같기도, 랩 같기도 했다.




3.


영화를 보고 바로 폐막작을 상영하는 전주 돔으로 넘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뒤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영화인을 꿈꾸는 학생인지 서로에게 꼭 저 레드카펫에 서 보자며 이야기했다. 폐막식이 끝나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폐막작 상영 시간이다.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인가. 이번 폐막작은 〈개들의 섬〉이었다.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쏴아- 빗소리가 귀를 스쳤다. 부지런히 천막을 두드리는 세찬 빗소리와 돔 안에 가득 들어차 앉은 사람들, 모든 이의 시선이 향한 스크린. 온몸으로 와닿는 풍경이 꿈같았다. 내 마음에 꼭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영화에 눈을 고정한 채 몇 번이고 생각했다. “지금을 잊지 말아야지”





글 사진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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