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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4호] 예술, 평화를 말하다
예술, 평화를 말하다
허진권 작가
PEACE(평화)라 적힌 흰 종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연결된다. 우리를 어디론가 안내하는 길처럼 PEACE 문구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그 길을 따라 한 걸음 내디뎠던 작가가 쪼그려 앉는다. 무엇을 하나 자세히 보니 종이 옆 도로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첫걸음에는 P, 다음 걸음에는 E, 그렇게 PEACE라는 글자가 걸음을 따라 도로에 흩어진다. 곧이어 사람들이 차례대로 작가의 뒤를 쫓으며 도로 위에 선명히 새겨진 PEACE라는 글자를 지운다.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따라 다시 한번 평화라는 글자를 남겨 보지만 이를 지우는 사람 역시 쉬지 않고 평화를 방해한다. 마지막 희망은 작가 곁에 놓인 작은 초록색 칠판이다. 작가는 모서리가 해진 칠판에 PEACE라는 문구를 적어 내고 가까스로 이 문자를 지켜 낸다. 그렇게 지켜 낸 글자는 꼬리를 물었던 평화의 길 끝에 놓인다. 허진권 작가가 지난여름 임진각에서 펼친 행위예술은 그의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관객에게 평화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예술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_평화
지난 4월, 한국과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이후, 우리 사회가 가장 많이 회자한 단어라면 단연 ‘평화’가 꼽힐 것이다. 추상적인 평화라는 단어가 가시적으로 온 국민에게 전달되는 요즘. 한국과 북한, 미국 중심으로 각국 정상이 평화적인 협력 관계를 위해 고도의 신경전을 벌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 행동의 끝은 결국 자국의 이익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평화란 무엇인가’ 자문하며 허진권 작가를 만났다.
허진권 작가와의 만남은 언제나 평화적이다. 로큰롤 공연에서 팬들이 자주 취하는 핸드사인, 중지와 약지를 접은 이 사인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인사법이기 때문이다. 평화를 상징하는 손 모양을 흔들며 인사하는 작가를 만날 때마다 일상에서 잊고 있었던 위트와 평화를 마주한다.
허진권 작가는 평화라는 주제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친다. 때로는 화폭에 평화가 담기기도 하고, 지구본이나 붓처럼 일상적인 물건이 평화를 표현하기도 한다. 공간을 넘어 전국 각지에서 행위예술을 펼치며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관객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작가에게 평화가 무어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구속받지 않는, 어디에서도 자유로운 상태”였다.
“예술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은 평화입니다. 자유의 상태인 거죠.”
평화와 자유를 담기 위해 허진권 작가는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회화, 음악, 무용 등 예술의 장르가 하나의 울타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1981년 허 작가가 처음으로 열었던 개인전도 경계를 뛰어넘는 작품이었다. ‘삶이 곧 예술이다’라는 주제로 진행한 전국 순회 개인행위미술전은 지극히 허진권 작가다웠다. 3면에 구멍을 뚫은 쌀 포대자루를 마치 허수아비처럼 뒤집어쓴다. 포대자루 앞뒤에 순간이 곧 예술이라는, 그래서 행함의 사연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선언문도 새겨 넣었다. 포대자루를 입은 채로 서대전역에서 목포로, 제주도로, 부산으로 또다시 대전으로 이어지는 길을 여행하며 사람들에게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게 곧 예술’이라는 말을 전했다.
“제 고향은 섬입니다. 높은 산도 없어 늘 넓은 수평선 속에서 살았죠. 고향에서 제일 높은 게 굴뚝이었어요. 평화로운 일상에서 재밌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종의 예술 행위라는 게 그 권태로운 일상에 돌멩이 하나를 던져 파장을 일으키는 일인 것 같습니다. 예술로 경계를 허물며 아슬아슬하게 노는 셈이랄까요.”
생명이 무어냐
숨 한 번 들이쉰 순간이다
_예술
작가가 지난 4월 3일부터 5월 15일까지 천안 리각미술관에서 진행한 개인전 제목은 ‘평화와 통일의 프롤레고메나* -네 신을 벗으라’였다. 우리라고 하는 사회적, 국가적 집단에서 공동의 평화는 무엇일까를 담았다. 작가가 생각한 현재 우리 사회가 원하는 공동의 평화는 ‘통일’이다.
“자칫 정치 활동 같아 보이지는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형이상학적으로 사회의 평화를 생각하다 보니 평화와 통일이 떨어질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평화와 통일에 대한 전시를 열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오브제는 지구본과 성경이다. 작가는 지구본에 선명히 새겨진 국가의 경계를 붓으로 지우며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는 남한과 북한의 안타까움을 치유하려 했다.
“사람마다 평화를 보는 시각이 다를 겁니다. 사안에 따라 서로 충돌되기도 하죠.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평화라는 목표를 향해 가며 대립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에서도 말입니다. 폭력, 테러, 전쟁 등 그들은 모두 평화가 명분이라고 말합니다. 융합의 시대지만 종교는 융합될 수 없는 존재 중 하나입니다. 이제는 융합을 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죠. 평화로 가기 위해 우리는 무조건적 융합을 추구하기보다 상대를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예술가든 자기의 종교적 색채가 작품에 담기기 마련이다. 목원대학교 기독교미술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만큼, 작품에 종교의 색이 물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모든 종교에 중심이 되는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사랑, 불교는 자비, 유교는 인이다. 이 중에서도 작가는 기독교의 사랑에 주목했다.
“자연스레 기독교가 사랑이라는 도구로 평화를 이루고자 한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종교의 중심 가치는 공통적인 가르침과 맞닿아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해탈의 경지에 올라라, 이 순간을 감각적으로 최선을 다해 즐겨라.”
이어 작가는 “삶이 곧 예술이고, 내가 있는 이곳, 이 시간, 이 현장을 벗어나면 예술로서 특별한 의미가 없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생명이 뭐냐 숨 한번 들이쉰 순간이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허진권 작가는 앞으로도 ‘평화’라는 주제로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상황에 따라 부제는 달라지겠지만 언제고 순간을 담은 예술의 중심에는 평화가 자리할 듯하다.
글 오시내
사진 오시내, 허진권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