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5호]일본의겨울

집 근처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가니 먹음직스러운 귤이 한가득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일본에 겨울이 왔구나 하고 실감하며 한 봉지 장바구니에 넣었지요. 사람들이 어느새 옷을 한두 겹 더 입고 있는 걸 보니 다들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는 듯했습니다. 제가 사는 오사카의 겨울은 한국의 제 고향인 대전의 겨울과 거의 비슷해서 눈이 내려 가끔 소복이 쌓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 북쪽 홋카이도나 동북지방은 눈이 소복이 쌓이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 키를 넘는 폭설이 내리기도 하고, 저 남쪽 오키나와에서는 같은 겨울이라도 한 층 기온이 높아 추위를 덜 맛보기도 해요. 일본에서의 겨울나기는 한국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답니다.

고타츠
일본의 겨울 하면 뭐가 생각나느냐고 일본인들에게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고타츠’라고 대답합니다. 고타츠는 좌식 탁자에 전기 히터가 달린 일본 특유의 난방기구예요. 물건을 올려놓는 위판 부분과 다리가 달린 아랫판 부분을 분리할 수 있어 그 사이에 고타츠 전용 이불을 세팅하여 사용하지요. 춥지 않은 계절에는 이불을 빼서 보통 탁자처럼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바닥 난방이 흔치 않은 일본은 이 고타츠 속에서 추위를 피하며 식사하기도 하고 공부하기도 하고 가족끼리 대화하기도 합니다. ‘숲선생(카일린의 남편)’도 겨울만 되면 이 고타츠에 온종일 틀어박혀 있다가 잠이 드는 것이 일상입니다. 고타츠에서 귤을 까먹는 모습은 전형적인 일본의 겨울 이미지입니다. 요즘은 각 가정의 인테리어에 맞출 수 있도록 다양한 디자인의 고타츠가 출시되어 텔레비전에서 선전하곤 해요.
추운 겨울을 따듯하게 밝혀 주는 일루미네이션 또한 일본의 겨울에서 빠뜨릴 수 없습니다. 도심 속 거리의 나무들이 예쁘게 빛나는 것은 물론, 디즈니랜드 등의 유원지, 각종 관광지, 심지어 역사 깊은 유적지도 일루미네이션으로 따듯하게 불빛을 자랑하지요. 그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루미네이션은 록본기 힐즈의 일루미네이션입니다. 록본기 힐즈 안의 케야키 언덕에 가서 일루미네이션을 내려다보세요. 빛나는 가로수길 사이로 도쿄의 상징인 도쿄타워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답니다. 시간대마다 다른 빛으로 변하는 일루미네이션의 불빛은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환상적이에요. 퇴근길에 좀 돌아가더라도 꼭 케야키 언덕을 지나 귀가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커다란 냄비에 다양한 재료를 넣고 푹푹 끓여 먹는 ‘나베 요리’는 겨울에 간절하게 생각나는 요리입니다. 가족들, 혹은 친구들끼리 모여 한 냄비를 둘러싸고 수다를 떨며 먹는 나베 요리는 넣는 재료나 국물 맛이 아주 다양합니다. 소금 나베, 된장 나베, 김치 나베, 두유 나베, 카레 나베, 토마토 나베 등 기호에 따라 메뉴를 고를 수 있지요. 제가 숲선생과 자주 만들어 먹는 나베는 소금 나베입니다. 소금과 마늘, 생강, 닭고기 다시다로 간단히 국물을 만들고 채소와 고기를 설겅설겅 썰어 넣으면 끝! 건강에도 좋고 몸도 따듯해지고 간단하기까지 한 효자 메뉴예요. 마지막에는 밥이나 면을 넣고 끓여 먹으면 아주 배가 든든해지지요. 대학생 시절, 친구들끼리 각자 나베 재료를 하나씩 가져오기로 하고 자취하는 집에 모여 나베를 먹곤 했습니다. 물론 고타츠 안에서요! 날이 추워지면 나베의 필수 재료인 배추가 슈퍼마켓에서 금방 동나는 걸 보면, 나베는 일본 겨울의 국민음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일루미네이션

나베



 

겨울에 언제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바로 ‘삿포로 눈 축제’예요. 매년 2월에 열리는 이 축제에서는 눈과 얼음으로 만든 크고 작은 예술작품이 전시됩니다. 이 축제를 보기 위해 일본 전국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찾아온답니다. 홋카이도에서 제일 대규모인 이 축제는 50년도 넘게 계속되고 있다고 해요. 눈과 얼음으로 만들어진 성, 동물은 물론 스타워즈, 포켓몬스터 등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도 있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입니다. 한국처럼 일본에도 아름다운 사계절이 있다는 걸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즐길 거리가 많은 일본의 겨울도 추위에 떨다 보면 더디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 이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걸 찾다 보면 날마다 행복하겠지요?
 
글 사진 박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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