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134호] 머물지 않는 청년이 모이는 공간
머물지 않는 청년이 모이는 공간
연하다 여관
금산 유일의 게스트하우스 연하다 여관. 연하다 여관은 ‘지구에는 연하게, 지역에는 진하게’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다.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으며 함께 공존하고, 청년의 비빌 언덕이 되어 지역에서 진하게 우리만의 색을 퍼트리자는 의미다. ‘금산하면 인삼’이라는 타이틀을 지우고 새로운 색을 입히고 싶다는 쌀과 솔. 지역 청년이 모여드는 공간이고 싶은 게스트 하우스. 금산에는 연하다 여관이 꿈틀대고 있다.
좋은 공간에는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다
금산 읍내에 자리한 연하다 여관은 골목 뒤편, 아담한 빨간 벽돌 건물 1층에 있다. 식당으로 쓰던 공간을 빌려, 연하다 여관 문을 열었다. 2층에는 주인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산다. 건물 외부 1층과 2층 사이, 테라스처럼 생긴 공간에는 주인집에서 기르는 식물이 세 들어 산다. 옹기종기 자리를 차지하고는 한창 햇볕에 몸을 그을리며 여유 부리고 있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눈에 담길 정도로 내부 공간이 아담하다. 은은한 향냄새가 코를 스쳤다. 공간 곳곳에는 화려한 만다라 천이 걸려 있고, 드림캐처를 비롯해 각종 인도풍 장신구로 꾸며져 있다. 전날, 나눔 장터에서 쌀이 저렴한 가격에 들여온 옛날 유리장도 이곳과 참 잘 어울린다. 연하다 여관의 첫 느낌은 강했다. 어느 공간을 가도 운영자의 색이 묻어나기 마련인데, 그런 면에서 연하다 여관을 운영하는 쌀과 솔, 두 사람은 아마 찰떡궁합이지 싶다.
거실에서 손님방으로 향하는 통로 중간 벽에 책장과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손님의 사진이 붙어 있다. 책장 위에는 쌀과 솔이 직접 먹어 보고, 돌아다니며 찾은 금산의 맛집과 명소를 적어 둔 파일철을 두었다. 게스트 하우스 운영에 앞서 금산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소개할 만한 것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연하다 여관을 방문하는 게스트를 위해 쌀과 솔이 공들여 준비한 선물이다. 가만 보니, 책장 역시 나무판 사이사이에 벽돌을 쌓아 만든 완벽한 DIY다. 공간을 장식하는 조형물들까지, 공간 대부분이 직접 고민하고 만들며 정성들여 준비한 흔적이 역력하다.
낮과 밤. 연하다 여관의 손님방 이름이다. 낮은 4인실 도미토리, 밤은 2인실이다. 이름에 걸맞게 낮과 밤의 분위기를 살렸다. ‘낮’은 활기찬 느낌이 강하다. 세계지도가 벽에 펼쳐져 있고, 천장에는 모빌이 걸려 있어 아기자기한 분위기다. ‘밤’은 아늑하다. 방 안에 작은 조명이 하나둘 놓여 있고 침구도 포근해 보인다. ‘밤’은 어두울 때가 더 예쁘다는 솔의 말처럼 깊은 밤 빛 하나에 의지해 여유를 만끽하기 좋을 것 같다.
“언젠가 한 손님이 연하다 여관의 뜻이 ‘인연’의 연을 써서 연하다냐고 질문했던 적이 있어요. 듣고 보니 좋은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이 인연을 맺으니 그 말도 맞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어요(웃음).”_솔
인터뷰 중 ‘연하다’라는 이름의 뜻을 물었을 때, 솔이 말해 준 일화다. 그 말에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공간에는 늘 자연스레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다.
지역은 남겨지는 것이 아닌,
살아가고 남아 가는 것
쌀과 솔은 연하다 여관을 시작하기 전, 청년 대안대학교 ‘아랑곳’에서 활동하며 전국 각지에서 모이는 수강생의 숙박 문제를 고민했다. 연하다 여관은 이 고민에서 나왔다. 워낙 급하게 시작하고 준비한 일이었지만, 주변에서 많은 사람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친구, 지역 청소년, 청년, 선생님, 윗집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너도나도 팔을 걷어붙이고 돕기 시작했다. 곰팡이 제거부터 도배까지 크고 작은 공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쌀과 솔이 다시 금산에 내려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 덕분이었다. 쌀과 솔은 서울과 일산이 고향으로 서로를 도시 촌놈이라고 말한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도시 생활이 몸에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서울은 각자 너무 바쁘다 보니 도시 전체가 정신없게 느껴졌어요. 나는 느긋하게 살고 싶은데, 모두가 분주하니까 꼭 내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스무 살에 다시 금산에 내려왔어요.”_쌀
솔은 대학 진학에 별다른 뜻이 없었다. 도시보다는 지역에서 살아 보고 싶었지만, 막상 연고가 없는 곳은 겁이 났다. 그래서 아는 사람 많은 금산이 자신의 비빌 언덕이 되어 줄 것 같아 내려오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연하다 여관이 청년의 비빌 언덕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예전에는 많은 청년이 금산에서 자리를 잡았으면 했는데, 지금은 청년이 어디에서든 정착하지 않고 살아 봤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지역은 도시로 가지 못하는 사람이 남겨진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잖아요. 지역이 ‘남겨지는 것이 아닌, 살아가고 남아 가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_솔
쌀은 요즘 연하다 여관이 계속해서 ‘문화롭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생각은 연하다 여관을 방문했던 한 게스트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누군가 도시와 시골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저에게 물어봤어요. 왜 도시와 시골을 구분 짓는지 의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유난히 가슴에 남았어요. 많은 사람이 지역에서는 안 된다고 말해요. 모든 음악가는 도시로 가야 한다고, 도시는 모두에게 열린 기회의 땅이지 않냐고 말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에요. 지역에서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조금씩 활동을 확장해 나가면 도시 뺨치게 이곳만의 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시골이고 낙후한 지역이고를 떠나서 그냥 금산이라는 지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_쌀
글 사진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