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5호] 책을 만드는 사람

책을 만드는 사람

펄북스 김은경 편집장

 

 

 

펄북스 김은경 편집장은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책을 만든다는 건, 그 책에 담긴 원고를 제일 처음 읽고, 가장 많이 읽고, 가장 오래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원고를 선택하고, 그 원고가 담길 디자인이라는 그릇을 선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이라는 세계가 따로 있어 그 입구가 있다면 그 입구에서 서 있는 문지기가 바로 편집자다. 그러니 편집자는 졸다가도 번쩍 눈을 떠, 그 입구로 들어서는 ‘무언가’를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바라본다. 그 입구에서 걸러지는 것들은 절대로 입장할 수가 없다. 토씨 하나라도, 쉼표 하나라도.

 

 


 

펄북스, 진주에 있는 출판사
  펄북스 출판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진주문고를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진주문고는 32년 된 경남 진주의 지역서점이다. 2015년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는 출판사 ‘펄북스’를 만들었고, 박남준 시인의 시집 《중독자》를 첫 책으로 펴냈다.
펄북스는 지역 서점을 기반으로 한 출판사라는 특성을 살려 '도서관, 서점, 출판, 책'에 관련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좋은 콘텐츠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 《책과 책방의 미래》가 그 맥락에서 지금껏 출간된 대표 도서인데 펄북스만의 색깔이 되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관련된 내용의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은 김은경 편집장이 2년 전 펄북스에 입사한 이후 '지역'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 책이었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지역’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내 주변과 소통하고 재미난 작당을 벌이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 
《책과 책방의 미래》는 매년 가을 열리는 후쿠오카의 ‘북쿠오카(BOOKUOKA)’ 북 페스티벌에서 출판사, 도매상, 서점에 몸담은 사람들이 모여 책과 책방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녀는 직접 ‘북쿠오카’에 참여하기도 했다.
“권정애 번역가가 북쿠오카를 검색해서 함께 참여하게 됐어요. 출간 계약을 맺기 전에 행사 참여도 하고, 직접 이 책의 일본인 편집자도 만났어요. 책 작업은 재미있었어요. 궁금한 게 있으면 번역가도 바로바로 만나고, 페이스북 채팅으로 일본인 편집자에게 궁금한 걸 직접 문의하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진주의 헌책방 소소책방을 운영하는 조경국 저자의 단편집 《아폴로 책방》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조경국 작가는 진주에서 지역 주민들과 ‘손바닥 소설 쓰기 모임’을 하고 있었고, 그동안 써 두었던 손바닥 소설을 모아서 단편집을 냈다.
“조경국 씨는 재주 많고 재미난 분이에요. 진주에 살게 되면서, 제가 세뇌시켰어요. ‘너는 나의 진주 절친이다~’ 저보다 동생인데, 워낙 성격이 원만해요. 절친이라는 이름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생활 글쓰기 모임을 하자고 해서, 저도 참여하게 되었고요.”
진주는 서울에 비하면 익명성이 결여된, 정말 작은 도시였다. 자신은 모르는 사람이 그녀를 알아볼 때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즘은 이 익명성의 결여도 즐기고 있다. 동네 사람들과 물물 교환으로 필요한 것을 나눠 쓰기도 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동네작가>라는 무크지를 만드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봉봉커피 마담이 권정애 번역가예요. 봉봉커피가 진주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지트 같은 역할을 해요. 봉봉커피 마담과 라이브바 우산 대표와 아르바이트생, 소소책방 책방지기가 동네작가 멤버예요. 이들이 의기투합해서 비정기적으로 매호 한정판인 <동네작가>를 만들었어요. A4 용지에 프린트해서 3천 원에 팔기로 했어요. 저도 여기에 시를 실었고요.”
이런 생활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으리라 그녀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원고들이 모여 펄북스 출판에 좋은 재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노란색 바코드가 어때서?
  김은경 편집장은 뒤늦게 출판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출판사에서 일하기 전 15년 동안 지역의 방송국 CG실에서 일했다. 캘리그래피를 배우러 서울로 올라온 일이 계기가 되어 얼떨결에 한겨레출판편집학교에 들어갔다. 원래는 캘리그래피 전문가반에 들어가 캘리그래피를 본격적으로 배우려 했지만 그해 수업이 개설되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책 표지의 캘리그래피 작업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출판 과정을 배우기로 한다. 그렇게 한겨레출판편집학교에 들어간 것이 2010년이다.
“출판학교에서 편집일을 배우는 것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하지만 ‘편집자가 되어야겠어’ 이런 생각은 못했어요. 그렇게 수업을 들었는데, 출판학교를 졸업할 때 한 출판사 대표가 저에게 같이 일을 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사실, 수강 기간 내내 그분은 자신이 출판사 대표라는 사실을 숨겼거든요.”
편집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지만, 그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출판학교에서 접한 출판 경험이 너무 재미있어서였다. 첫 직장은 단출했다. 동갑내기 대표와 후배 한 명. 세 명 모두 한겨레출판편집학교 동기였다. 출판사 대표는 과외로 돈을 벌어 와 책을 만들었다. 그녀는 조판부터 출판 전체 과정 걸친 모든 일을 다 했다. 한 번은 책 표지를 만드는데 바코드 색깔을 노랗게 해서 보냈다가 인쇄소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다. ‘왜 바코드는 노란색으로 하면 안 돼?’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몰라 실수투성이였지만 모든 것이 즐거웠다.
그 시절 그녀는 일하면서, 길을 걸어가면서 웃고 다녔다.
실실실.
너무 좋아서 그랬단다. 원고 볼 때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편집을 하다 보면, 원고 내용과 상관없이 검색을 통해 곁다리로 정보를 알아내는 것도 재미있었다. 15년 다닌 직장을 그만둘 때 직장 동료들은 다들 그녀에게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 우연한 책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벌써 9년이 되었고, 그녀는 웬만한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 고유의 편집색을 지닌 자신만만한 편집장이 되었다. 

 

책의 의미, 편집자의 의미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책 이외의 매체가 너무나도 다양해진 이 시대에 종이책 편집자는 흔들린다.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건 편집자의 입지가 흔들린다는 말과도 같다.
“편집자는 크게 두 가지 성격으로 나뉘는 거 같아요. 하나는 기획편집자고, 하나는 원고만 파고드는 편집자인데, 어떤 경우든 어쨌든 자기하고 생각이 맞는, 책으로 만들 가치가 있는 원고를 선택해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사람이 편집자예요. 오류를 바로잡아 주기도 하고, 작가가 생각한 방향에 따라 보완하고, 교정교열 과정에서도 살아 있게끔 조율을 해서 적합한 모양새로 만들어야 하죠.”
그녀는 책을 만들 때 자신의 표현이나, 자신이 말하는 방식을 교정·교열할 때 투영시키지 않도록 주의한다. 적합한 모양새란 메시지에 딱 맞는 판형과 디자인 모든 걸 포함한다. 그녀는 ‘만듦새’라는 표현을 썼다. 내용과 책의 꼴이, 온전한 합을 이룰 때 책은 저 나름의 물성을 지니고 그 자체로 빛난다.
끊임없이 오류와 싸워야 하는 편집일에서, 종종 놓치는 부분이 발생하면 ‘이불킥’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 경중에 따라 하루, 심할 때는 일주일을 ‘이불킥’이라 불리는 침체기를 겪어야 한다. 오탈자보다 더 큰 문제는 저자의 생각과 방향성을 놓쳤을 때이다.
“저자가 이런이런 생각을 펼쳐 놓았다고 하더라도, 저자가 원래 말하려는 방향과 색깔이 달라졌는데도 캐치하지 못하고, 넘겨 버린 순간이 있어요. 그런 일은 정말 편집자로서 부끄럽죠.”
이렇게 오랜 정성과 숙고를 거쳐서 만든 책을 그녀는 잘 팔고 싶다.
“책을 많이 팔고 싶어요. 요즘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책을 팔겠다는 욕망과 욕심에 사로잡혀 있어요.”
책 한 권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책 한 권에 디자이너, 편집자, 번역가, 인쇄소의 기장까지 여러 사람의 수고가 든다. 사람들은 예전만큼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은 많이 나오지만 팔리지 않는 책이 더 많다. 그런데도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더 늘어나고, 사람들은 독립출판, 1인출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만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책과 함께하는 인생은 행복한 걸까? 이 도시에서 책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까,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일단은 책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있어요. 요즘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 말하는데,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이 텍스트를 안 읽는다는 것과는 달라요. 어느 사회보다, 읽기에 중독된 사회예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읽고 있어요. 책으로 된 형태를 안 읽는 거지 끊임없이 뭔가를 읽고 있어요.”
그녀는 출판계에 있는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형태가 꼭 책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필요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일정 정도 수준의 텍스트가 담겨 있는 것이 책이고, 책의 형태로 읽었을 때 그 의미가 심도 있게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그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가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편집자 스스로 콘텐츠를 가공하는 사람인지, 책을 만드는 사람인지 생각해야 되는 시절이 온 것 같다는 그녀의 말은, 책을 대하는, 책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의 고민을 담은 말로 들린다. 그녀가 이러한 고민들 속에서도 묵묵히 책을 만들고 있는 이 땅의 편집자들에게 묻는다.
“다들 어떻게 살아들 가슈?”


글 사진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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