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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3호]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미투 운동 이후, 한국사회 어디로 갈 것인가?
미투 운동의 바람이 거세다. 지난해 할리우드에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저지른 수많은 성범죄를 폭로한 사건을 계기로 전 세계에서 미투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한 사람이 경험한 성범죄는 단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인구의 절반인 여성 모두가 겪어 온 슬픈 일상이었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한국에서도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한 성범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연극계를 비롯한 문화계에서 벌어진 성범죄가 공론화되기 시작했고, 그 목소리는 학교와 직장으로까지 퍼져 나갔다. 폭설처럼 쏟아지는 미투 운동, 우리는 이 움직임을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할까.
미투 운동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지난 4월 18일, 대전광역시인권센터와 대전여성단체연합이 대전광역시NGO지원센터에서 ‘#미투 운동(Me Too Movement) 이후, 한국사회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인권특강을 열었다. 이번 특강은 다양한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시민이 모여 미투 운동과 운동 이후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100여 명의 시민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투 운동에 관심이 있어 참여했다는 나이 지긋한 남성도,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학생도,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시민도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자리했다.
이날 기조강연을 맡은 하랑연구소 강선미 소장은 세 가지 견해를 바탕으로 미투 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담론으로 노동과 성에서의 남성지배, 원치 않는 성적 관심을 차별의 한 형태로 보며 이에 대한 법적 정의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반면 남성중심적 자유주의자는 성희롱은 대부분 무해한 농담에서 시작되며, 법적 보호는 평등만을 요구하는 여성의 특권이라고 주장한다. 남성중심적 자유주의자들은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주목하며 ‘왜 그런 남자를 만났어?’ ‘왜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에게 돌아가?’ ‘회식 자리에서 어떤 옷을 입었는데?’ 등의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이들은 조직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가해자를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다’라고 평가하는 반면, 피해자를 ‘그는 원래 예민한 사람이다’라고 평한다. 이런 사회적 낙인은 여성을 침묵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다.
마지막 견해는 성인지적 시스템 관리자의 담론이다. 이들은 성희롱이 조직의 경제적 효율성과 생산성에 해악을 끼친다고 말하며, 성희롱, 성폭력 예방관리의 통합성을 강조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실시한 ‘직장인 근무환경 실태조사(2016)’에 따르면 성희롱을 포함한 직장 내 폭력으로 열다섯 개 산업 전체 인건비가 약 4조 7,835억 원 손실됐다고 한다. 이와 같은 문제에 주목한 호주, 영국, 캐나다, 미국 등 많은 국가가 ‘폭력을 치유가 필요한 전염병’으로 간주하고 다양한 대중 인식 캠페인을 전개한다. 실제로 UNDP(유엔 개발 계획)가 여섯 개국 남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 네 명 중 한 명이 여성파트너에게 신체적, 성적 폭력을 가해한 경험이 있으며, 열 명 중 한 명이 성인여성이나 소녀를 강간한다. 가해자 대부분은 불행한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이들은 여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걸 당연시하고 싶어 했고, 상대의 동의 없이도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투 이후,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모두가 침묵했던 이야기가 공론화되고, 성에 따른 차별과 폭력을 멈춰야 한다는 인권적, 경제적, 사회적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금부터는 쏟아져 나온 #미투를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할 차례다. 강선미 소장은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으로 ‘집단적 트라우마 치유의 시작’인 미투를 경청함으로써 피해자의 치유를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제도와 법을 바꿔 여전히 숨죽이고 있는 취약계층 여성을 도와야 한다. 또한, 남성중심문화를 바꾸기 위해 캠페인을 펼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미투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을 불평등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전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2차 피해와 피해자에 대한 역고소 문제 해소를 거론했다. 권력을 광범위하게 행사할 수 있는 SNS상에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피해를 없애고, 범죄 발생 조직 안에서 내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행해지는 영향력을 차단해야 한다. 또한 성폭력피해자를 무고죄로 역소고해 이들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하는 문제를 해소한다.
발제자로 나선 대전광역시 인권위원 이봉재 변호사도 피해여성을 오롯이 보호할 수 없는 현행법과 제도개선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강간죄의 성립여건이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폭행과 협박’이며, 그 정도를 법적으로 심리하기 어려운 만큼 강간죄 개념을 다시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온라인 성폭력에서 신체가 아닌 물건을 촬영한 경우 불처벌한다는 조항이 있으며, 한 남성이 화상채팅 중 상대의 신체를 휴대폰으로 촬영했지만 사람이 아닌 컴퓨터를 촬영했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를 언급했다. 이외에도 이봉재 변호사는 직장 내 성폭력, 성희롱 피해자 배려 조치를 법적으로 명시하고, 올바른 초동대응을 위해 여성경찰관 비율을 늘려야 하며, 피해자의 성이력, 외모, 나이, 직업,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근거로 고소의도를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발제자로 참여한 공주교육대학교 장원순 교수는 “성적 욕망은 남녀 공통의 문제인데 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만 만연한 것일까? 크게는 권력의 존재와 문화 때문이다”라고 성범죄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했다. 경제, 나이, 지식, 정치 등 권력의 근원에서 여성은 낮은 지위에 놓인다. 우리 사회는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는 권력을 적절히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 적 없기에 상대적으로 권력을 쥔 남성이 성범죄를 일으킨다고 분석했다.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 차별적 경제 구조를 개선하고, 미디어에 등장하는 소위 막장 드라마의 정도를 줄이며 산업화로 추동되는 선정적인 노래와 춤을 완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차별에 대한 고발이 멈추지 않도록 급진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전원이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With You 캠페인 선서를 낭독하며 끝을 맺었다.
“우리는 미투 선언을 지지하고,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한다. 우리는 성차별적 발언을 하지 않으며, 타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세상을 반대한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지 않으며, 성평등한 노동환경과 지역사회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우리는 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적극 동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