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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3호] “원자와 허공뿐, 나머지는 의견에 불과하다
“원자와 허공뿐,
나머지는 의견에 불과하다”
나는 답답할 때 과학책을 읽는다
별이 반짝인다. 갑자기 천둥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친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날이 갠다. 태양이 지고 달이 뜬다. 낮과 밤이 정확하게 교차한다. 사람들은 궁금했다. 누가, 어떻게 이런 마술을 부린단 말인가. 어느 날 사랑하는 가족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름시름 앓더니 눈을 감는다. 불과 며칠 전까지 함께 웃고 떠들었던 가족이다. 사람들은 궁금했다. 누가, 왜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갔는가.
이런 모든 일을 관장하고 조종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신은 그렇게 탄생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물었다.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세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왜 그런 자연 현상이 일어나는지. 대답은 비슷했다. 신령과 신, 신화적 상상의 존재들이 그 답이었다.
기원전 6세기 ‘불순한 사고’의 태동
기원전 6세기 무렵 에게해를 중심으로 한 이오니아에서 인류 최초의 ‘불순한 사고’가 태동했다. 별이 반짝이고, 천둥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고, 낮과 밤이 반복되고, 가족이 죽는 이 모든 일에 어쩌면 법칙과 원리가 존재할지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5세기 무렵 밀레토스에서는 고대 신화나 종교에서 답을 구하는 대신 관찰과 이성, 무엇보다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는 일군의 무리가 생겨난다.
이른바 밀레토스 학파.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히포크라테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아낙사고라스 등이 그 주인공이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혼돈(Chaos)에서 질서(Cosmos)를 발견했다. (…) 신들이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고, 자연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물리적 힘의 결과로 만들어졌다는 발상의 대전환이 이루어졌다.” 과학, 과학적 사고는 그렇게 탄생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의 일이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는 그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구전에 따르면 기원전 450년 밀레토스를 떠나 압데라로 가는 배에 한 남자가 타고 있었다. 그의 여행은 인류 지식의 역사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여행이었다. 그의 이름은 레우키포스였다.
그의 삶에 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데모크리토스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모든 시대의 사상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 바로 그 데모크리토스 말이다. 저자이자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 무엇을 발견했던 것일까요? 밀레토스인들은 이성을 사용해서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다양한 자연 현상들이 단순한 무언가에서 기인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고는, 바로 이 무언가가 무엇일지를 이해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이 세계는 엄청 복잡할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매우 단순하며 그 단순함은 논리적 사고를 통해 입증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우주의 최소단위로 ‘아토모스(원자)’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데모크리토스의 말을 빌려 요약하면 이렇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원자와 빈 공간뿐, 그 외의 모든 것은 의견에 불과하다.”
인류가 멸망해도 물려줄 단 하나의 지식, 원자
그렇다. 모든 것은 원자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이제는 원자보다 더 작은 단위의 입자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초 물리학의 최대 화두는 원자였다. 1940년대에 들어서자 원자핵이 주 관심사로 부상했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연구 분야는 더욱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관측 도구가 정밀해지면서 물리학자들은 극도로 작은 영역을 볼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리처드 파인만은 물리학 입문 강의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만약 대격변이 일어나 모든 과학 지식이 소멸했는데, 딱 한 문장만을 다음 세대에 전해 줄 수 있다면, 가장 적은 단어로 가장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문장은 어떤 것이 될까요? 저는 원자 가설 또는 원자 사실, 아니면 뭐라도 불러도 좋습니다. 모든 것은 원자, 즉 서로 조금 떨어져 있을 때는 끌어당기지만 서로 압착되면 밀쳐내면서 영구 운동을 하며 돌아다니는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놀라지 마시라. 데모크리토스는, 그리고 일군의 밀레토스 학파는 현대 물리학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도 이런 생각에 다다랐다. 세계의 짜임새를 이해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원자의 운동과 조합이 무작위로 우연히 만들어 낸 부산물일 뿐이다. 세계를 이루는 무한히 다양한 물질도 결국 원자의 이러한 조합에서 파생했다.
책은 이렇게 장대한 원자론의 역사로부터 시작한다. 목표는 하나다. 현대 과학과 20세기 물리학의 두 기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이를 위해 저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밀레투스 학파로부터 시작해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거쳐 뉴턴으로 이어지는 물리학의 역사를 섭렵한다.
인류는 어쩌면 더 잘했을 수도 있다. 이미 2,500~2,600년 전에 세상의 법칙과 과학적 사고를 잉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세시대가 끝날 때까지 인류는 다시 기나긴 신화와 신의 세계에 갇혀 지내야 했다. 중세를 거치면서 자유로운 사고와 사상이 부활한 1,600년경에 들어서야 인류는 다시 1,000년 전에 선조들이 고민했던 문제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인류의 장대한 물리학 여정은 신이 지배한 중세의 암흑을 거쳐 현대 물리학으로 이어진다. 뉴턴과 맥스웰이 고전 물리학을 완성했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보어는 양자이론을 발표한다. 두 이론을 통해 우리는 저 멀리 우주의 세계와 운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관측될 뿐) 미시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고전 물리학에서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개념이었다. 하지만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류는 깨닫게 된다.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20세기가 인류에게 남겨 준 보석이다. 세계를 이해하고 현대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풍요로운 선물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일반상대성이론은 잘 세공된 보석이다. 중력과 공간과 시간에 대한 단순하고 정합적이며 개념적으로 명확한 하나의 시각이다. 반면 양자역학은 복사 강도 측정, 광전효과, 원자 연구 등과 같은 실험의 결과물이다.
그러면서도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우주론의 대가답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양자공간과 양자시간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지구가 공간 속에서 떠다니고 우주에는 위와 아래가 없다는 것을 이해했던 아낙시만드로스처럼, 우리가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던 코페르니쿠스처럼, 시공이 연체동물처럼 찌그러지고 시간이 다른 장소에서는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이해했던 아인슈타인처럼.”
책을 읽고 원자와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을 이해했다면 거짓말이다. 더구나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연결하는 루프양자중력은 말할 것도 없다. 늘 그렇듯 나는 이번에도 책에서 말하는 내용의 100분의 1도 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다. 즐거웠으며, 유쾌한 여행이었다. 2,500년 과학과 물리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오면서 질문은 계속된다.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이 책을 즐겁게 읽었다면 《코스모스》와 《신의 입자》 일독을 권한다. 주된 내용과 전개 방식은 달라도 주제는 같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도대체 우리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