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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3호] 체코를 마지막으로 돌아가자, 나의 자리로
체코를 마지막으로 돌아가자, 나의 자리로
이주연 기자의 필름로드
잔뜩 골이 나 있었다. 가끔씩 이유 없이 우울하고 입을 삐죽거리는, 그런 날이었다. 여행 내내 붙잡고 있던 긴장의 끈과 피로가 만든 우울과 심통으로 하루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유럽의 도시를 만나는 매시간은 즐거웠지만, 나의 원래 자리가 그리웠다. 계속된 피로로 지쳐 있을 즈음 여행은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체코를 마지막으로 이제 나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체스키크룸로프로 떠나던 길, 그나마 있던 설렘은 사라지고 수학여행 온 여고생이 되었다. 관광지에 도착했지만 피곤함에 버스에서 내리고 싶지 않은, 그저 늘어지게 잠이나 자고 싶은. 그런데 사람 마음은 참 갈대 같다. 도착하고 나니 또 금세 힘이 솟는다. 마을 어귀에 도착해,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봤다. 참 뾰족뾰족 빼곡하기도 하다.
길을 걷다 한 갤러리를 발견했다. 알폰소 무하 전시 현수막이 너풀거리고 있었다. 곧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5유로를 내고 전시장을 돌았다. 관람객은 나 하나였다. 직원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걸을 때마다 나무 바닥과 계단이 삐걱거렸다. 열린 창문 너머로 사람들 말소리가 들렸다. 창가에 걸터앉아 가만히 눈만 껌벅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카렐교에서의 소원
프라하는 감정의 곡선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무렵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다. 하늘은 우중충했고, 맑은 날 없이 부슬비가 내리는 날씨는 딱 내 기분 같았다. 아이들과의 시간은 재밌었다. 구시가 광장에서 제일 기대했던 건 구시청사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프라하의 모습이었다. 날은 흐려도 눈에 가득 담기는 주황색 지붕을 보고 싶었다. 아쉽게도 구시청사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당연히 천문시계도 볼 수 없었다. 홧김에 하멜시장에서 기념품만 잔뜩 샀다. 아이들과 보낸 하멜시장에서의 자유 시간으로 여행의 아쉬움을 달랬다.
성대한 퍼레이드 축제가 끝난 카렐교를 아이들과 함께 걸었다. 다리 중간에는 성 요한 네포무크와 강아지 부조상이 있다. 소원을 이루어 주는 동상이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만졌는지 손길이 닿은 곳은 잔뜩 닳아 있었다. 한 친구가 소원을 빌고 나서 나도 해 보란다. 그래서 무심코 두 손을 올리고 소원을 빌었다.
요즘 내 소원은 무조건 건강이다. 눈을 질끈 감고 “내 주변 모든 이가 건강하게 해 주세요”라며 소원을 빌었다. 마음 한편에는 “소원을 이뤄 주는 동상따윈 없어!”라며 변덕을 부리고 있었다.
글 사진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