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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3호] 2018 토마토 영화 찍기로 결심하다
2018 토마토 영화 찍기로 결심하다
함께 영화를 본 이후 직원들은 틈날 때마다 영화 이야기를 했다. 영화를 찍기는 찍을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시나리오를 맡은 자무쉬와 얌얌이는 고민이 많다.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살짝 풀어놓은 얌얌이의 시나리오는 모두의 기대를 모았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얌얌이, 자무쉬, 낙타가 북카페 이데에 모였다. 이 와중에 영화 프로젝트에 빠지기로 했던 낙타는 어느 날부터 슬쩍 합류했다.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아무튼, 전 직원의 기대와 바람, 간절한 염원이 담긴 요청에 힘입어 위대한 낙타는 다시 영화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낙타 얌얌이가 좋은 아이디어를 냈잖아. 얘기해 볼까?
얌얌 음. 먼저 내가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한정적인 공간이었어.
낙타 왜? 우리 사무실이라는 거 때문에?
얌얌 응. 아무래도 야외촬영은 어려우니까. 사무실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극적인 스토리를 어떻게 하면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지. 그래서 우리 사무실 내에 있는 인물 말고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는 게 재밌을 거라는 결론을 냈어.
낙타 야 너 진짜 대단하다. 너는 글을 쓰고 구성하는 재능이 있어. 글을 계속 써 봐. 진심이야.
자무쉬 얌얌이에게는 스토리텔링 재능이 있어. 얌얌이 덕분에 우리 칸 가는 거 아냐?
낙타 칸 같이 가자. 나 꼭 데리고 가라. 소감 말할 때 “낙타가 나의 상상의 뮤즈였다”라고 꼭 말해야 해. 알지? 그래서 스토리 한번 얘기해줘 봐.
얌얌 알겠어. 일단 스토리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인공지능이 있는 거야. 그 인공지능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6시까지로 정해져 있어. 디자인하는 로봇이라고 치면 포토샵, 인디자인 등 모든 일을 하는 거지. 처음에는 직원들이 인공지능을 엄청 좋아해.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직원들은 인공지능에 대한 의존과 함께 불만이 생겨.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인공지능을 왕따시키는 거야. 사람이 인공지능에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감정적 소외였던 거지. 점점 동료가 아니라 부속품으로 대하기 시작해. 회사 경영진도 마찬가지고.
낙타 와 이거 감정연기 진짜 잘해야겠는데?
자무쉬 근데 그 인공지능은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느껴?
얌얌 인공지능이 유일하게 못 하는 것이 분노와 같은 감정 표출이야. 무슨 일을 던져 주건 간에 시간 안에 해내겠다는 대답만 하는 거야. 그래서 생각한 장면이 있는데, 이 인공지능이 불이 다 꺼진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는 거야. 컴퓨터 화면 불빛 하나만 의존한 채로. 어둠도 두려워하지 않고, 먹을 음식이 필요하거나 화장실을 갈 일도 없으니까. 그냥 내내 앉아서 일만 하는 거야.
낙타 (한껏 빠져든 표정이다) 캬. 진짜. 장난 아닌데.
얌얌 그런데 반전은 그 인공지능이 사람이라는 거지. 진짜 인공지능이 아니었던 거야.
낙타 아니 근데 나는 그게 좀 걸려. 그냥 인공지능인 게 낫지 않을까?
얌얌 음. 나는 사회 안에서의 소외를 나타내고 싶어서 인공지능이 아니라 결국엔 사람이었다는 걸 생각했거든? 내가 생각한 다른 장면이 사람들이 옥상에서 웃고 떠드는데 그 친구가 사회생활을 못 하니까, 그 모습만 지켜보다 내려와서 일하는 거야.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틀에 맞추기 위해 인공지능처럼 일하고 있지만 사실 사람이었고 그 안에서 소외를 느끼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거지.
낙타 걔가 만약 사람이라면 소외를 느끼는 게 당연하지. 풍자적이고 해학적이네. 사람인데 인공지능인 척하면서 사는 거잖아. 그 결말이 훨씬 좋긴 하겠다.
자무쉬 그렇지.
얌얌 이 친구가 인공지능처럼 설정된 이유는 사람을 새로 뽑을 때 직원들이 사장한테 왜 이 친구를 채용했는지 묻는데 그때 사장이 “아, 내가 들었는데, 전 회사에서 인공지능이었대. 일밖에 모르는 애였던데?”라고 말하는 거야. 그 말이 점점 와전되는 거지.
낙타 영화에서 모두가 똘똘 뭉쳐서 이 인공지능 친구를 소외시키는데 얘를 끝까지 챙기는 옥자 같은 친구가 나와야 하지 않겠어?
자무쉬 그거 어제 스파 시키자고 했잖아.
낙타 그래. 스파를 시키는 거야. 이건 어때? 인공지능 여자가 혼자 새벽에 일하고 있는데 스파가 기타를 들고 들어와서 “노래 한 곡 불러드릴게요. 감정을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불러줄게요”라고 하면서 노래를 불러 주는 거야. 스파는 진짜 순수해서 인공지능이라는 소문을 믿은 거지. 자신이 인공지능을 좋아한다는 생각 때문에 고민하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인공지능을 찾아가서 노래를 불러 주는 거지. 근데 그때 그 인공지능이 눈물을 흘려. 그럼 스파가 “당신 기름이 흐르는 건가요?”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 장면에서 사람이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거야.
얌얌 막 “당신 눈에서 녹이 흘러요” 이러는 거 아냐? 어쨌든 마지막엔 그 인공지능 친구가 회사를 그만둬. 그리고 나레이션이 나와. “3개월 후 그 친구는 퇴사했다. 지금은 어디서 사람처럼 살고 있을까, 인공지능으로 살고 있을까”라고 나오는 거야. 어때?
낙타 아냐. 그 나레이션은 촌스럽지 않아? 근데 퇴사하는 게 좋겠네. 마지막 장면은 굉장히 극적이어야 해. 그 인공지능이 영화 내내 한마디도 안 하다가 마지막에 방언 터지듯이 욕을 하는 건 어때?
자무쉬 욕을?
낙타 응. 막 야 이 샹XXX, 제기랄! 하는 거지.
자무쉬 (정색한다) 아냐. 그건 진짜 안 어울려. 나는 그냥 퇴사하는 게 나을 거 같아. 퇴사하고 회사를 나가는 뒷모습을 보여 주는 거지.
낙타 그때 스파가 따라가는 거야.
얌얌 그러고 뭐. 키스해???
낙타 그것도 좋은데??? 그래. 퇴사, 퇴사하는 거로 끝내자.
자무쉬 아. 얌얌이 시나리오 반응 너무 좋은 거 아냐? 내가 생각한 건 말도 못 꺼내겠어.
낙타 넌 뭐였는데?
자무쉬 내가 생각한 건 갑자기 회사가 망한 거야. 문 닫은 회사 앞에서 직원이었던 두 사람이 나오면서 시작해. 장면이 플레시백하면서 문 닫기 전의 일이 나오는 거야. 그런 얘길 생각했어. 근데 잠깐, 뭐야 낙타 표정, 뭐여?
낙타 우울하다.
자무쉬 응. 좀 우울하지.
한참 동안 열띤 대화가 오갔다. 생각보다 순조롭게 시나리오 회의를 마쳤다. 얌얌이의 기가 막힌 시나리오에 직원 모두가 감탄하고 있다. 그만큼 얌얌이의 부담감도 커져만 간다. 제목에 대한 다양한 의견도 나왔지만 아직은 미정이다. 물론 시나리오도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어찌 됐건 ‘2018 토마토 영화 찍기로 결심하다’는 나름대로 순항 중이다.
글 이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