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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3호] 문화재단, 젊은 예술가들의 비빌 언덕이 되었으면...
문화재단, 젊은 예술가들의
비빌 언덕이 되었으면…
대전 문화재단 이춘아 전 대표
임기를 못 채우고 스스로 사임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과정을 지켜보면서 꼭 사임까지 해야 할 일이었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사임을 결정하신 건가요?
사임하라고 성명서를 냈던 문화예술 단체를 모아서 해명하고 의견을 들어 보려고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성명서를 냈던 모든 단체가 참석했으면 좋았을 텐데, 예총과 예총 각 협회 분들만 참석을 하면서 상황이 좀 난감하게 되었지요.
유일하게 자리에 참석한 예총 입장에서도 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요. 상황이 이상하게 되었어요. 기자들도 많이 왔거든요. 마치 기자회견장에 예총이 불려 나온 모양새가 되었어요. 의도하지 않았던 바예요. 실제로 문화재단이 지역 예술단체 사이를 이간질시켰다는 이야기도 나왔으니까요.
사전에 간담회 자리를 조율하셨을 텐데,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죠?
사전에 확인을 했지요. 참석 가능하다는 답변이어서 일정을 진행했는데, 결국 이런저런 사정으로 불참하면서 상황이 좀 이상하게 된 것이지요.
취임하시면서부터 다양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편안할 때가 한 번도 없었지만, 사임 즈음에 발생한 결정적인 문제는 ‘국제기타페스티벌’이었어요. 심사위원과 수상자가 사제지간인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끄러웠는데요.
당시에 문제를 제대로 빨리 인정하지 못했던 건 맞는 것 같아요. 잘못한 부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사과하는 후속 대처가 미흡했지요. 핑계지만, 실무 팀장에게 맡기고 저나 실장이 직접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어요. 그러면서 제대로 사과할 수 있는 시기도 놓쳤고요.
그래서 문제 해결은 사임밖에 없다고 판단하신 건가요?
그렇죠. 대표인 저뿐만 아니라 조직 안에 다른 사람들까지 굉장히 비판 받았잖아요. 그럴 때는 보통 대표가 모든 일을 책임지고 사임하는 것이 맞지요. 그래서 사임을 결정했어요.
나름의 판단을 하신 거네요. 사임이라는 방식으로 대표가 책임지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끌고 가는 상황이 된다고 생각해 결정하신 거군요.
제가 계속 재임하는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노력이 별 소용없는 상황이었어요. 일단 제가 빠져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어요. 6월에 지방선거가 있으니까 그때까지는 버텨야 한다는 생각도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도 했고요. 그게 문제였던 거예요. 저 스스로도 ‘시끄러운 일’ 정도로 생각했던 거지요.
사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해결 방식 아닌가요? 그냥 조금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잊힐 거라는 생각. 과거에도 많은 문제로 시끄러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그냥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묻히는 걸 기대했던 건 아닌가 싶어요. 그랬다가 다른 문제가 생기면 묻어 두었다고 생각했던 일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요. 묻어 두는 것과 해결하는 것은 분명 다르잖아요.
한편으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찾아다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어요. 하지만, 문화재단 내부에서 대표가 자꾸 여기저기 나서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또 혼자 나서서 해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더라고요. 사임한 후에 다시 생각해 보아도요.
상황이 그쯤 되면 대표라도 나서야 되는 거 아닌가요? 발생하는 문제나 그것을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문화재단의 조직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곧 출범 10주년인데, 그 정도 관록을 지닌 기관의 문제 해결 방식이 여전히 어설프고 불안정하거든요.
처음 대표를 시작할 때는 조직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문화재단 대표는 어차피 임기를 마치면 떠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조직 내부에서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길 바랐는데, 그렇지 못했죠.
앞서 제가 이야기한 것처럼 조직이 문제 해결 프로세스와 그를 수행할 역량을 탑재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들리는데요. 그것과 관련해서 인사문제도 문화재단 내외부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었잖아요.
외부에서 볼 때는 인사이동이 잦다는 말도 많았지요. 그런데 문화재단 자체 인원이 대표를 포함해서 50명이다 보니까, 팀장이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직원들도 움직이게 되죠. 인사이동이 잦을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아홉 명 밖에 안 되는 팀장 중에 한둘이 움직이면 표가 확 나지요.
자리를 자주 옮기는데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조직이 안정감을 갖고 나갈 수 있는 것에는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잖아요. 인사와 관련해서 취임 초기부터 소송도 있었고요. 해고와 복직 등으로요.
대전문화재단 실장 자리는 정무직이에요. 일반적으로 낙하산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일 년을 하고 평가를 진행해서 이후에 1년을 더 하는 구조죠. 보통 출연기관에 그런 자리가 있어요. 그 자리가 조직 안에서 큰 위력을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면 미치는 영향이 덜할 텐데, 대전문화재단에서 그 실장 자리가 대표 다음 직급이다 보니 미치는 영향력이 크죠. 이 문제는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통 조직 사례에 비추어 보면 실질적으로 대표 바로 밑에 직급인 실장이 사실상 내부 팀과 구성원에 대한 지휘, 통솔, 관리를 맡을 거 같은데요. 이 자리가 1년 단위 계약직이라면 조직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겠어요. 선거 등 정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독립성을 확보해야 할 대전문화재단 전체를 줄세우기 하며 종속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언제든 열어 두는 거잖아요. 이런 복잡하고 내밀한 상황이 어떻든, 이에 따른 문제가 발생하면 대표 역량의 문제로 보잖아요. 리더십으로 연결 짓죠.
리더십 얘기가 나오면 저도 할 말이 없죠. 내부에서 직원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고, 외부에서도 나를 쳐다만 보고 있으니. 임기 내내 생각했던 건 조직의 안정성이었어요. 대표가 바뀌거나 누구 한 자리가 비더라도 문화재단 자체가 안정적으로 운영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그러기 위해선 중간관리자인 팀장들이 안정적이어야 해요. 중간 리더십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팀장들도 쉽게 나서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대표에게는 강하게 밀어붙이는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간혹 생각해요. 내가 들어갔을 때 문화재단이 조금 더 안정적인 상황이었다면 내 스타일의 리더십이 먹힐 수 있었을까?
리더십에 관한 부분에서 이춘아 전 대표는 많이 곤혹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로가 강한 리더십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처럼도 보였다. 이와 관련해 복잡한 생각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눈치였다. 그 모습을 보며 2016년 이 전 대표가 대전문화재단 대표로 선임된 후 썼던 월간 토마토 ‘편집장 편지(2016년 8월호)’가 떠올랐다.
당시, 대전시는 이춘아 대표 내정 결과를 보도자료로 배포하면서 “여성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소통과 화합을 추진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당시 ‘편집장 편지’를 통해 이에 관한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이라는 규정은 구시대적 발상이고, 화합은 자칫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적당히 감추기 위한 ‘꼼수’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대전문화재단의 지속적이고 고질화된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화합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실행’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끝에 이런 우려를 드러냈다.
“더는 논 한가운데 세워 놓은 허수아비에게 그해 농사 망친 책임을 덮어씌우며 탓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라고 말이다.
대전문화재단에 계실 때 논란 있었던 일 하나가 대전에서 진행한 문화예술활동가대회예요. 대회 유치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지역 문화예술계에 지적이었죠?
서울에 있는 문화연대가 2016년부터 전국 문화 활동가 사업을 했어요. 대전에서 그런 행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진했죠. 그래서 참 열심히 했어요. 더군다나 전국대회니까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래서 마음도 급했고. 그때 모금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어요. 모금 과정에 재단 직원이 나설 수도 없었고요. 그래서 내가 나서서 모금 활동을 했는데, 대전문화연대에서 하는 행사로 오인을 받은 거죠. 대전문화연대로 오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결과적으로 활동가 대회는 성공적으로 잘 치뤘는데, 제가 생각 못한 부분이 있었던 거예요.
대전문화연대가 진행한 것이라 생각하도록 오해를 만든 것도 문제였지만 그런 전국 대회를 유치하면서 왜 지역 문화예술계와 협의를 하지 않았는지도 문제였잖아요.
나는 이런 전국대회가 대전에서 열리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먼저 다른 단체들과 협의할 생각을 못했죠.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에요. 그냥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서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진행을 했어요. 그런 식의 파장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최근 일련의 문제 끝에 대전문화재단이 쇄신안을 만들고 의견도 수렴하는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내용을 좀 살펴보았는데, 무릎을 칠 정도는 아니에요. 오늘 이 전 대표님을 인터뷰하면서도 든 생각이고 나름 9년 동안 대전문화재단을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대전문화재단의 쇄신은 결국 대전시를 비롯한 핵심 문화 권력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사실 어떤 쇄신안도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대전문화재단이 대전시에서 독립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구조예요. 보통 대전세종연구원이나 평생교육진흥원 같은 경우에는 여러 이유로 시나 의회가 큰 관심을 두지 않아요. 워낙 내용이 전문적이기도 하고 특별한 영역이니까요. 그래서 예산 편성도 그냥 1식으로 가볍게 정리하는데 문화재단 사업은 그렇지 않아요. 일일히 다 설명하고 점검을 받지요. 대전시가 그동안 진행했던 사업을 넘겨 받아 진행하는 사업도 있다 보니, 완벽하게 독립하기 어려운 구조예요.
시장이 전향적인 태도를 가지고 의지를 표명하며 진행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요? 문화예술은 그 성향과 특성상 정치에 종속되어서는 안 되거든요. 무엇보다 생동감 있게 살아 있어야 할 영역이잖아요.
아무래도 대전문화재단이 진행하는 사업이 시장이나 의원들이 유권자를 만나기 쉬운 자리잖아요. 시 문화예술 담당부서는 문화예술 관련 행사에 몇 명이 올 것이며 시장이나 의원이 가야 하는 행사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업무예요. 대전문화재단 사업 전체를 꿰고 때로는 조율할 수밖에 없지요. 전체 업무 자체를 아예 분리해 버리는 것이 필요한데. 이런 식으로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 쉽지는 않겠죠.
분리독립은 고사하고 오히려 종속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생기는데요?
문화예술 관련 부서가 이제 기피 부서가 아닐 거예요. 축제처럼 시민 삶과 밀접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행사를 총괄하고 그 자리에 시장을 수행하며 참석할 수 있으니까, 공무원 입장에서도 좋은 기회를 많이 만들 수 있겠지요. 왜 전국에 문화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 군, 구에서 문화재단을 속속 만드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더 쉽지 않을까요? 정무적 측면에서 문화원장과 자치 단체장 간의 갈등도 종종 생기고요.
대전문화재단의 완전한 독립은 이미 많은 곳에서 계속 주장하는 바다. 그만큼 절실하고 필요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며 추진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문화예술 영역이 정치 세력이나 이익 집단의 통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최악의 경우다. 대전시라는 정치 행정 권력뿐만 아니라 단체라 표현할 수 있는 이익 집단도 마찬가지다. 통제하거나 간섭하려 들면 안 된다. 문화재단은 예술 생산자뿐만 아니라 수용자, 매개자 모두에게 균등한 관심과 지원을 보이며 문화예술 전체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사명이어야 한다. 대전시가 대부분 기금을 출연한 출연 기관으로서 통제권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무감 내지는 유혹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떨쳐 버려야 한다.
점점 더 문화예술 영역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향후 필연적으로 관련 행·재정적 자원 투입이 많아져야 하고, 그럴 것이라 기대한다면 문화재단의 완벽한 독립과 자율적 운영은 더욱 절실하다. 물론, 이 자율적 운영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조직 역량을 갖추는 것은 당연한 전제다. 이 기조를 분명히 한 상태에서 쇄신안이 나와야 한다. 이 쇄신안을 내야 할 주체를 분명히 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대표라는 자리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겁니다. 재임 기간 1년 5개월 동안 각종 소송과 문제 속에 휘말려 소진하느라 업무를 진행할 여력이 없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문화재단 대표로서 구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재단 직원들과 항상 이야기한 부분이 문화재단이 젊은 예술가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정말 좋아했고,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많이 찾아가서 만나려고도 했고요.
일부에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반발이 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여하튼 신경을 썼던 부분이라 사임하시고 아쉬운 부분이 있겠습니다.
제가 사임을 했어도 아마 젊은 예술가를 위한 사업은 계속 진행할 거예요. 저는 문화예술이 장르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할 때즘 청년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희망을 보았어요. 자리를 만들어 주니까, 젊은 친구들이 장르를 넘나들며 소통하고 교류하며 새로운 것을 보여 주더라고요. 이걸 놓치면 안 되겠다고 계속 생각했어요.
동의합니다. 차세대아티스타 사업도 분명 의미 있는 사업이라 생각하고 더 발전시켰으면 좋겠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 주세요.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잖아요. 그런 시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정작 요구하는 리더십은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있어요. 고정된 리더십은 새 시대에 걸맞지 않는 리더십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경험하고 성장했던 곳에서 저는 긴 호흡으로 시간을 갖고 일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부분에는 좀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담 정리 이용원
기록 사진 이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