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행복한 콘텐츠로 관광객 아닌 방문객을…

시민이 행복한 콘텐츠로 관광객 아닌 방문객을…

아침저녁으로 여전히 춥지만 한낮을 데우는 공기가 예전같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 봄이 오는 3월은, 지난해 여운이 남은 채 한 해를 준비하는 1, 2월을 지나 본격적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달인 듯합니다.

2019년은 ‘대전방문의해’입니다. 애초 계획과 달리 ‘대전방문의해’ 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했습니다. 어리둥절했지만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어휘를 보며 다양한 해석을 할 수는 있지만, ‘어떤 사람이나 장소를 찾아가서 만나거나 봄’이라는 방문의 사전적 의미를 고려하면 ‘대전방문의해’ 핵심은 ‘관광’입니다. 사람이나 장소를 찾아가서 보려는 것은 업무일 수도 있고 친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 차원에서 방문객을 유치하려는 것은 아무래도 ‘관광’에 방점이 찍혔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그렇게 인지하고 있을 터인데, 다시 한번 분명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 방문에 많은 이가 관심을 두는 건, 관광 산업을 통해 도시가 좀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 때문일 겁니다. 그 윤택한 정도와 유효 기간에 관해서는 사람마다 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겠지요. 설날 세뱃돈을 기대 하는 아이의 설렘 정도는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겁니다.

2019년을 ‘대전방문의해’로 설정했지만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 정도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였습니다. 태생적으로 관광자원이 풍성한 관광도시도 아니었기에 더욱 막막했을 겁니다. 이런 답답함에 3년 연장이라는 카드는 좀 낯 부끄럽지만 ‘대전방문의해’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을 겁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조금 더 편을 든다면, 차라리 급조한 엉성한 준비로 예산만 낭비하고 성과도 없는 것보다는 창피 한 번 당하고 튼튼한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 도시 미래를 위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난 2월 19일 대전시는 시청 대강당에 시민을 모으고 ‘대전방문의해 범시민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낯선 풍경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무척 전통적인 의식입니다. 실제로 어떻든, 시민 모두가 뜻을 하나로 모아 설정한 방식에 동의한다는 사실을 환호와 함성, 구호 등으로 보여 줍니다.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머릿수로 세를 과시하며 만방에 보여 주는 선전 선동 방식입니다. 이것도 경기에 나서기 전, 손을 모아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는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날 함께 발표한 10대 콘텐츠 4개 테마, 신규 여행인프라 확충 내용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며 ‘이럴려고 3년을 연장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가지 문제인식의 결여가 보였습니다. 하나는 대전 관광산업이 활성화하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평가와 분석입니다. 관광객이 관광지를 선택하는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핵심은 ‘차별성’입니다. 그것이 경관이든 콘텐츠든 다른 곳이 아닌 대전에 가야 하는 명확한 차별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 차별성은 순간 이벤트처럼 펼치는 일회성 사업을 가지고는 결코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대전이라는 도시가 가진 자원과 역량, 도시가 지향하는 방향성 등 다양한 요소를 엮어 콘셉트를 분명하게 확정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과 재정을 투여하며 부족한 자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번에 새로운 여행콘텐츠 운영 사업이라고 발표한 10대 콘텐츠 내용을 보면,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기획을 한 것인지 도무지 가늠해 볼 수 없는 일회성 이벤트가 가득합니다. ‘대청호 할로윈 마을’, ‘K-POP 뮤직 페스티벌’, ‘디지털 정글’, ‘대전 EDM 페스티벌’ 등은 한 때 유행했던 것을 모두 끌어다 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콘텐츠가 우리 시에 무엇을 남겨 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아무리 성공적이어도 일회성 흥행밖에는 기대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결과로 절대 만족할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겁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관광산업’에 대한 고민도 전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관광도시에서 이미 기존 관광 산업이 지닌 한계와 문제점을 인식하며 개선하려 하는 데 ‘대전여행 천만시대’를 외치는 대전시는 우리가 지향 해야 할 새로운 관광산업의 패러다임에 대한 얼마나 깊은 고민이 있으며 이를 시민과 함께 합의해 갈 의지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매년 돌아가면서 개최하는 전국체전 준비하는 정도로 ‘대전방문의해’를 준비할 거였다면 기간을 굳이 3년으로 늘릴 필요는 없었습니다.

대전방문의해를 3년으로 연장한 기저에는 지금과는 다른 철학이 깔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도시에 ‘관광 영역’은 어떤 비전을 가질 것인지에 관한 것부터 차근차근 점검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지금까지 대전을 ‘관광도시’라 여겼던 사람은 없기에 훨씬 좋은 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민감한 표현의 문제지만 꼭 관광도시일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관광 패러다임이 그렇게 흘러가니까요. 이 도시에 삶의 기반을 두고 살아가는 시민이 행복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한다면, 관광객이 아닌 도시 방문객은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대전방문의해 3년 기간은 외지인이 방문하고 싶을 만큼 시민이 행복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콘텐츠의 생산과 매개 수용 생태계를 갖추는 데 ‘예산과 시간’을 투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도시에 사는 시민 행복을 배제한 관광은 왜곡된 착취와 수탈 구조일 뿐입니다. 많은 관광도시에서 앞서 저지른 과오를 굳이 따라하는 우매한 정책은 과감하게 폐기하는 것이 옳습니다.

도시 전체에 따뜻한 봄 햇살이 골고루 내려앉기를 희망합니다.

2019년 2월 26일

월간 토마토 편집장 이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