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를 찾아서...제2화 옹기종기모여 한 그릇. 순대국밥

오렌지

2016-12-19

‘안주를 찾아서’

 

 

 

제 2 화 옹기종기모여 한 그릇. 순대국밥

 

순대국밥과 소주 한 병. 만원도 하지 않는다.

 

나는 한밤중에 차가 다니지 않는 차도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여름에는 밤산책이라는 이유로 열대야를 피해 밤의 차도를 휘적휘적 걸으면 나름 운치도 있고 세상의 주인공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겨울밤의 차도는 조금 다르다.

 

추운 겨울 밤, 차가 다니지 않는 차도를 걸을 때는 언제나 따뜻한 집을 향한 분주한 발걸음에 주변을 둘러볼 새 없이 지나쳐가곤 한다. 하지만 그 길이 길어지다 보면 어느새 허기를 느끼게 된다. 그럴 때 늘 나의 눈앞에는 순대국밥을 파는 식당이 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뿌연 안경을 한번 휙휘 닦고 남들과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밤을 달려온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저녁부터 술을 시작하여 이곳이 3차쯤은 된 것 같은 일행등, 늦은 데이트에 잠시 허기를 달래러 온 것처럼 보이는 30대 커플, 나처럼 혼자 앉아있는 중년의 남성. 하루의 이야기의 마지막 점을 찍으러 온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메뉴. 바로 순대국밥이다.

 

주문은 순대국밥 하나와 소주 한 병.

순대 한입에 소주 한 잔.

국물 호로록, 소주 호로록.

 

순대국밥을 처음 접했던 것은 중학교 무렵이었다. 당시 살던 집 앞에 순대국밥집이 새로 오픈을 하였다. 주말 점심 때쯤이었을까? 어머니가 그 순대국밥집에서 국밥을 사오셔서 그것으로 점심을 해결한 적이 있었다. 아마 어머니가 점심하기 귀찮으셨던 것 같다. 그 때 처음 먹었던 순대국밥의 맛은 새로웠다. 순대는 떡볶이와 함께 먹는 애들 음식이라는 생각이 180도로 바뀌었다. ‘이것은 어른의 맛이다!’

 

순대국밥을 본격적으로 애정하게 된 계기는 대학생 때이다. (나의 입맛의 대부분은 대학생 시절 형성되었다.) 대학교 1학년이던 2007년, 당시 학교 기숙사에는 통금시간이 정해져있었다.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기숙사 입구를 잠그기 때문에, 기숙사에 살던 친구들과 12시 넘어서까지 술을 먹게 되면 무조건 새벽4시까지는 같이 있어주어야 했다.

 

요즘에야 24시간 식당이나 술집들이 제법 많지만 그때 그곳에는 24시간 영업을 하는 식당이 두 곳 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재도 여기저기 있는 프랜차이즈 중국집과 지금은 사라진 ‘24시간 할머니순대국밥’. 그중에서 우리는 한 그릇에 2000원밖에 하지 않는 순대국밥집을 자주 갔었다. 2000원짜리 순대국밥은 멀건 국물에 순대 몇 개 썰어놓고 파채를 조금 얹고 고춧가루를 슬금슬금 뿌린, 맛있는 순대국밥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국물을 계속 주는 점은 지갑 얇은 대학생들에게는 어느 맛집보다 맛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순대국밥으로 유명한 집들을 찾아다니며 이건 어떤 맛이니, 저건 어떤 맛이니 하며 얄궂게 평가를 한다. 그러나 20살 당시 네 명이서, 다섯 명이서, 옹기종기 모여 국밥 하나 시켜놓고 소주 한 잔에 국물 한 숟갈 먹던 그 때의 맛은 나질 않을 것이다.

 

오늘 저녁 집에 가기 전 순대국밥 한 그릇 어떠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