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학교성소수자동아리RAVE>
2016-12-14커밍아웃 13 - 충남대학교성소수자동아리RAVE 원지원
1.
16살의 A와 나는 꽤 친한 친구였다. 사는 동네가 멀었지만 시험이 끝나면 당연히 만나서 놀아야 했다. 그 날은 서로의 시험이 언제 끝나는지를 문자로 얘기하다가 딴 길로 새는 중이었다.
-넌 왜 여자연예인을 좋아하냐?ㅋㅋㅋㅋ너 바이냐?ㅋㅋㅋㅋ
어 나 바이인 것 같아ㅋㅋㅋㅋㅋ
-oh my god! 내 친구가 바이라니
ㅋㅋㅋㅋ농담이야
-나도 농담이야ㅋㅋㅋㅋㅋ
고등학생 때 나는 배우 수애를 좋아했다.
-야 여고생들은 아무리 예뻐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수애를 하진 않아. 보통 원빈을 하지.
왜? 예쁜데. 나는 원빈 보다 수애야.
A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나는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약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A에게 직접적으로 내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을 얘기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한 커밍아웃을 A가 봤길 바랄 뿐.
2.
20살이 되고 친구들과 술을 진탕 마신 날, 나는 카톡으로 H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H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나에게 바이라고 커밍아웃을 했던 친구였다.
나 여자도 좋아해
-그럴 것 같았어 새삼스럽게ㅋㅋㅋㅋㅋ
여자 좋아하면 안되는데ㅜㅜㅜ
-야 괜찮아 우리가 다른걸 어떡해 어쩔 수 없어 우린 우리대로 사는거야
-그리고 나는 니가 S 좋아해서 나 싫어하는 줄ㅋㅋㅋㅋ (S와 H는 절친이었다.)
야 그건 진짜 아니야ㅋㅋㅋㅋㅋ
자기 연민에 빠져 괴로워하는 성소수자였던 시절, 평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술에 취한 김에 저질러 버린 커밍아웃이었다. 나의 첫 커밍아웃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H의 오해가 더 기억에 남는다. 나는 정말 S에게 연애감정을 가진 적이 없다.
3.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테이블에 E와 나만 남았을 때 E가 말했다.
-너 바이지?
누가 먼저 물어온 적은 없어서 좀 당황스러웠지만 신기하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다.
누가 그래?
-아니 그냥 딱 보면 느낌이 오잖아. 너 여자 좋아하지?
아니라고는 안할게.
그 때는 아직 나를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혼란스러워하던 시기였다.
-나는 바이야. 너 여자 친구 생기면 나한테는 말해줘라.
그래.
까먹고 아직 E한테 여자 친구 생겼다는 흥겨운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4.
작년 초, 학교 가는 길에 정말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했다. 말 그대로 길거리였다. 그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기다리고 있었다. 뒷모습을 본 순간 1000톤 짜리 쇳덩어리로 머리를 후려쳐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정통으로. 이어폰을 빼고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얼마 후 스터디에서 친구들을 만나 그 얘기를 했다.
나 진짜 예쁜 여자 봤어.
-어디서?
그냥 길에서. 학교 가다가. 근데 진짜 예뻐. 내 인생에서 본 여자 중에 제일 예뻐. 앞으로 볼 사람 다 합쳐도 제일 예뻐. 진짜!
나는 그 사람을 본 순간과 내가 느낀 신기한 감정을 친구들에게 침착하게 전달하고 싶었지만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야 어깨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말하면서 딱 웃었는데 진짜 딱 그때 든 생각이 진짜 ‘와 꽃이 사람이 된다면 저렇겠다’ 이거였다니까.
-아 뭐래 진짜.
아니 진짠데. 진짜 바람에 흔들리는 꽃 같았다고.
친구는 온 몸으로 본인의 어이없음을 내뿜고 있었다.
-어쩌라고.
페미니즘 스터디에서 여자를 꽃에 비유하는 말을 하다니. 기분이 좀 이상하지만 정말 그 사람이 웃으면서 어깨를 흔들 때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빨간 튤립을 봤다.
친구들에게 그 날의 얘길 하면서 나는 내가 바이가 아님을 확신했다. 나는 여태 내가 좋아했다고 여겼던 남자들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건 제 7의 감각 쯤 되는, 단순한 느낌을 넘어서는 무언가였다.
1년 후, 그 때 길거리에서 본 바로 그 사람은 내 여자 친구가 되었다. 친구들은 모두 축하해주었다.
5.
동생한테 Snapchat이 왔다. 답장을 했다.
나 여친 생김
-ㅊㅋㅊㅋ
-스유를 봐라
동생은 나에게 자기가 보는 애니메이션을 영업했다.
6.
사실 M에게 어떻게 커밍아웃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M이 먼저 나에게 “너의 인스타에 자주 올라오는 그 분은 누구시니” 라고 물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분’을 처음 본 순간과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 까지 1년의 대서사시를 읊었다. M은 말했다.
-원지가 행복해져서 너무 좋다! 그래도 나한테 너무 늦게 말해준건 좀 서운하다!
7.
‘딸기들’은 고등학생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의 애칭이다.
여자 친구가 나에게 설렜던 순간을 얘기해 줬는데 딸기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연애 얘기는 친한 친구들이랑 하는 게 제일 재밌으니까. 그렇지만 아직 딸기들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딸기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줄지 아닐지 지켜보는 중이었다. 나를 인정하지 못 할 사람이라면 잃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딸기들은 잃기 싫었다. 걱정도 크고 나를 숨기고 있는 스스로에게 느끼는 답답함도 컸다. 그냥 이 참에 자랑도 하고 커밍아웃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딸기들에게 여자 친구가 나에게 설렜던 순간을 읊었다. 여자 친구가 한 말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일단은 그냥 친구가 해준 말이라고만 해뒀다. 그러자 한 딸기가 농담조로 말했다.
-ㅋㅋㅋㅋㅋ왜 안 사귀냐 그냥 사귀어버려ㅋㅋㅋㅋ
나는 이때다 하고 대답했다.
어 그래서 사귀기로 함ㅋㅋㅋㅋㅋ
채팅방에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딸기들이 얘기했다.
-축하해
-잘됐다
-드디어ㅋㅋㅋㅋㅋㅋ
5개의 딸기들 중에 나 혼자만 대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커밍아웃 이후로 딸기들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텍스트로는 커밍아웃 전과 다름없이 지내는 것 같이 보였지만, 과연 우리가 만나서도 이전처럼 지낼 수 있을까 조금 두려웠다. 나 혼자 딸기가 아니라 옥수수 쯤 된 기분이었다. 커밍아웃 7개월 뒤 겨우 딸기들을 만났다. 서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하던 중 딸기들이 정말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물었다.
-원지. 여자 친구랑은 잘 지내냐?
-연애하니까 좋냐?
나는 여전히 딸기였다.
8.
외할머니의 장례식장. 10명의 손주 중 첫째와 둘째인 나와 사촌 동생 Y는 열심히 상을 차리고 치우고 일했다. 잠깐 쉬는 시간이 생길 때 마다 여자 친구랑 연락 하느라 핸드폰을 붙잡고 있던 나를 본 Y가 웃으며 물었다.
-썸남이야?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여자야.
Y는 또 웃으며 물었다.
-그럼 썸녀야?
비슷해.
-오?
그리고 Y는 친구 커플이 깨져서 중간에 끼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얘기를 했다.
3일장 중 이틀 째 날. 조문객이 모두 간 늦은 밤,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외삼촌1, 외삼촌2 그리고 Y와 술을 마셨다. 외삼촌2는 대학 다닐 때 연애를 많이 해보라는 조언을 빙자한 잔소리를 했다.
-니 남자친구는 있나?
아니요.
-대학 다닐 때 연애가 제일 쉽다아이가. 내는 4년 동안 여자 친구가 8명이었다.
저 연애는 하고 있어요.
-이기 무슨 소리고? 야 들었나 야가 남자 친구는 없는데 연애는 한단다. 이기 뭔데? 니 남편있나?
외삼촌1이 멍한 표정으로 소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자 친구가 아니면 여자 친구겠지.
네. 맞아요.
정적이 찾아온 테이블에서 나는 혼자 벙글벙글 웃고 있었다. 커밍아웃 직후에 찾아오는 묘한 정적과 긴장감. 외삼촌1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시선을 돌린 채 썩어가는 그의 표정을 봤다. 외삼촌2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나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아마도 너의 성정체성 및 성지향성을 언제 깨달았냐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왠지 그것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심술 맞게 대답했다.
네? 원래부터요.
-야 너 멋지다. 이렇게 말해주는거 너무 멋진 일이다. 야 니 멋있네. 내 친구들 중에도 그런애들 있다. 야 니 멋있다.
외삼촌2는 여전히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나와 주먹 박치기를 했다. 외삼촌2에게 정말 성소수자 친구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겉으로는 나에게 멋있다고 말하고 속으로는 욕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내 앞에서는 본인의 디그니티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화장실을 갔던 Y가 돌아왔고 우리는 각자 잠자리를 찾아갔다.
3시간 쯤 자고 일어난 아침. Y와 화장실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얘기했다.
어제 니가 썸녀냐고 물어봤던 애 있잖아.
-응.
사실 내 여자 친구야.
-진짜?
진짜.
-어쩐지! 핸드폰을 너무 신경 쓴다 했다. 내 친구 중에도 언니 같은 애 있어.
나 걔랑 썸은 한참 지났어.
화기애애하고 술이 덜 깬 아침 5시였다.
두달 후, 외삼촌2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방학 때 Y랑 부산에 같이 오면 술이나 한잔 하자는 얘기 였다. 마침 동아리 사람들이랑 동아리 이름을 짓고 있던 때라 삼촌에게 동아리 얘기도 했다. 삼촌은 나에게 “역시 지원이 멋있다!” 라고 했다.
9.
학과 대학원 실험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B는 대학원생 중 한명이었다.
-배경화면 누구야?
여자 친구요.
-머리가 짧아서 남잔 줄 알았네. 너랑 닮았다. 많이 친한가보다. 머리도 비슷하게 자르고.
얘가 더 예뻐요.
-나중에 나 소개 좀 해줘.
예? 싫어요.
B는 나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커밍아웃 실패.
10.
J도 대학원생 중 한명이었다. 그는 나에게 왜 남자친구가 없냐고 물었다.
-너는 왜 남자친구가 없어? 한번도 없었어?
없었어.
-그럼 모쏠이네? 남자 소개라도 시켜줘야되나~
아냐. 남자친구는 없었지만 모쏠은 아냐.
-그게 무슨 말이냐? 말이 되나?
웃으면서 대답했다.
잘 생각해봐.
다음날.
-야 모쏠.
모쏠은 아니라니까?
J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말했다.
-뭐 그럼 여자라도 만나냐?
어. 나 여자 만나.
J는 잠시 할 말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럼 지금 만나는 사람도 있어?
어. 있어.
-아 내 주변에서 너 같은 사람은 처음 봐서 좀 당황스럽다. 호주에 있을 때도 못 봤는데.
J는 조금 어색해하더니 곧 평소처럼 재미없는 얘깃거리를 던지고 노래를 부르면서 실험실을 돌아다녔다.
J와 처음 대화를 했을 때는 벚꽃 축제가 열리는 4월이었다. 남자 친구랑 벚꽃 보러 안가냐는 말에 “여자 친구랑 갈 수도 있죠” 라고 대답 했는데 J는 내 말을 ‘여자 사람 친구랑 간다’ 로 이해했던 전적이 있다. 이번엔 내 말을 이해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1.
K는 중학생 때 친하게 지내던 남자애였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가면서부터 지금까지 잘 만나지 못하고 페이스북으로만 안부를 확인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나는 중학생 때 부터 K가 게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퀴어는 퀴어를 알아본다. 그의 페이스북을 훑어 보면서 점점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얘는 게이야. 나는 언젠가 K와 서로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될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나의 직감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올해 내가 퀴어문화축제에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휴가를 나온 K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나는 너의 연락을 기다렸고 우리는 동지다’ 라는 것을 뿜어내고자 했다.
-원지원지 잘 지내?
나는 잘 지내고 여자 친구가 생겼어ㅋㅋㅋㅋ
-너도 이쪽이야? 너는 내가 이쪽인거 언제 알았어?
너는 다 티나잖아ㅋㅋㅋㅋ
-얘 뭐래니ㅋㅋㅋㅋㅋ
우리는 그렇게 커밍아웃을 했다.
12.
애인과 함께 사는 우리집에는 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홍보 포스터 약 3800장이 쌓여있고 집안 여기저기 동아리 홍보 명함과 스티커가 널려있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부산에서 오랜만에 서울로 나들이를 간 김에 딸이 사는 대전에 와서 하루 자고 가고 싶다고 했다. 귀찮아 보이는 이동 경로지만 그렇게라도 오랜만에 딸이 보고 싶은 것 같았다. 아직 엄마한테 커밍아웃을 안했는데 집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가 도착하기 전 집안에 널려있는 동아리 홍보물 및 성소수자 관련 자료들을 주섬주섬 치우는 나를 상상해봤다. 너무 비굴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너 토요일에 서울 왜갔니? 시위가 아니면 어딜 간거야?
여기.
나는 QUV(대학 성소수자 모임 연대)의 팜플렛을 내밀었다. 엄마는 천천히 소리내서 읽었다.
-대학... 성.. 소수자 모임... 연대...
나는 벽에 붙은 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포스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엄마. 나 저거 해. 나 우리 학교 대표로 서울에서 하는 회의 갔다 온 거야.
나는 엄마한테 집에 있는 성소수자 관련 팜플렛과 잡지를 모조리 꺼내서 보여줬다. 엄마는 안경을 쓰고 열심히 읽어보다가 코를 골면서 잠들었다. 나한테 뭔가 더 물어보지 않아서 실망했다. 같이 사는 친구는 내 애인이고 이것저것 말할 준비가 다 돼있었는데.
자려고 누웠는데 애인이 말했다.
-아니 딸이 커밍아웃을 했는데 코를 골면서 잘 수 있나?
다음날.
엄마가 나갈 준비를 할 때 엄마에게 동아리 스티커를 주면서 말했다.
엄마 이거 핸드폰 뒤에 붙일래? 내가 디자인했어. 동아리 포스터랑 명함이랑 스티커 다 내가 디자인 했어. 이거 하느라 스트레스 받아서 그 때 위염이랑 장염 걸렸잖아.
-아 그래서 니가 여름에 바빴구나.
엄마는 핸드폰 뒤에 ‘충남대학교성소수자동아리RAVE’ 라고 적힌 무지개 스티커를 붙이고 집에 갔다.
13.
H에게 연락이 왔다. 책을 출판했다는 말과 함께 안부를 전해왔다. 축하와 함께 나도 내 안부를 전했다. 나는 지금 여자 친구랑 같이 살고 있으며 바이라고 커밍아웃 했던 지난날의 나를 잊어달라고. H는 내가 행복해 보여서 자기도 행복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