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를 찾아서... 제1화 어른이 된 줄 알았지. 김치피자탕수육

오렌지

2016-11-21

안주를 찾아서
 
 
 

1 화 어른이 된 줄 알았지. 김치피자탕수육




김치피자탕수육은 지금은 여러 지역의 사람들도 아는 음식이지만, 10년 전만하더라고 공주와 대전지역 정도에서만 즐기던 음식이었다. 공주의 한 가게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많지만, 인터넷의 댓글들을 보면 우리 동네에도 저런 거 팔던 집이 있었다!’라는 댓글이 많이 달린다. 새로운 메뉴로 요식업계의 도전하는 업주들 중에 김피탕과 유사한 음식을 만들었던 집들이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성공시키고 지속적으로 이어진 지역은 대전이 분명하다.

흐르는 치즈와 탕수육의 조합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뒤죽박죽한 괴상한 비주얼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 역시 많이 있다. 개인적으로 김피탕은 우리나라의 요상한 외식문화의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달고, 맵고, 짜고, 새콤한 맛의 소스와 늘어지는 치즈의 비주얼. ‘니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모두 준비했지!’ 바로 그거!



설마 이 중에 네 입맛 하나쯤은 있겠지



이 김피탕과 얽힌 나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2007년 고향을 떠나 처음으로 낯선 도시에 도착하였다. 그 당시에는 아직 하숙집들이 많아서, 개학이 2주 정도 남은 시기에 학교 주변을 걷다 보면 하숙집 아주머니들이 나와 호객행위를 경쟁적으로 할 때였다. 나 역시 첫 타향살이를 하숙집에서 시작하였다.

하숙집에는 총 11명의 남학생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그중 신입생들이 7명이었고, 군대를 다녀온 형들이 4명이 있었다. 그렇게 한창 남성 호르몬이 활발하여 쉰내 나는 남자들만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숙집은 남학생만이 모여있는 남자하숙집이었다. ‘응답하라 1994’처럼 남녀가 함께 사는 하숙집은 아주 드물었다)

 

하숙집 친구들끼리는 일주일에 한 번은 같이 모여 축구를 보며 맥주를 한잔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우리의 주된 안주는 탕수육이었다. 중국집에서 배달해 먹는 탕수육은 물론 아니었다. 중짜 하나에 6,000원 정도 하던 육영탕수육이라는 탕수육 전문 배달점의 탕수육이었다. (지금은 사라졌으니 상호를 말해도 괜찮겠지?) 당시 11명의 가난한 학생들이 천 원씩만 내면 중짜 2개를 시켜 맘껏 먹을 수 있었다. 한창 많이 먹던 나이인 20살 대학생들이 맘껏 먹었다면 양의 푸짐함은 이미 설명하기 충분하리라 본다. 사실 그 탕수육이 굉장히 맛있었던 것은 아니다. 딱딱한 고기튀김에 간장양념이 배어있는 그 탕수육은 싸고 양이 많다는 장점 하나로 우리를 만족하게 하기 충분하였다. 당시 인근 하숙생들 사이에서 육영탕수육은 값싸고 양많은 안주의 대명사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1살이 된 남자아이들은 하나둘씩 나라의 부름을 받아 입대하였고, 우리은 그렇게 헤어졌다.

2년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학교로 왔을 땐 하숙집들이 거의 사라지고 원룸 빌라로 대체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나의 하숙생활을 함께하였던 육영탕수육도 사라졌었다.

제대 이후에 어울리던 친구들은 함께 동아리를 하던 친구들이었다. 동아리방에서 함께 밤새도록 함께 놀며 하루 대부분을 함께 보냈다. 술자리 역시 조그만 동아리방에서 이루어졌었다. 24살의 남자들은 20살 때보다는 주머니 사정이 나았었다. 최저임금조차 모르고, 아르바이트하여 정당하게 받을 돈을 떼먹혀도 아무 말도 못 했던 20살 어린 그때. 그때보다는 세상사는 요령도 생겨 적당히 일하여 적당히 돈을 벌어 적당히 술을 마셨다, 술 마실 적당한 돈이 궁할 때는 군대에서 다져진 튼튼한 몸을 이끌고 새벽 택배 상하차 일를 하며 술값을 조달하였다.

그때 적당히 벌던 돈으로 함께 모여 주로 시켜먹던 안주가 바로 김치피자탕수육’, 줄여서 김피탕이다. 고기튀김에 김치가 섞인 탕수육소스가 얹혀지고 그 위에 피자치즈를 뿌려 녹인, 겉모습만 보면 치즈피자같은 그것이 바로 김피탕이었다. 젓가락을 넣으면 탕수육이 녹은 치즈와 함께 앙상블을 이루었고, 느끼하다 싶을 때, 김치가 섞은 소스가 입을 개운하게 해주었다.

우리 혀의 안식처였던 육영탕수육을 잊게 하는 맛. 가격 역시 더 비쌌다. 조금 더 비싼 가격의 안주를 먹으며 우리는 마치 20살 때를 옛 추억 말하듯이 허세를 부리는, 자칭 어른이 된 대학교 고학년이 되어있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든가, ‘아니 그게 아니라...’라는 말을 달고 살며, 마치 세상을 다 안다는 듯이 좁디좁은 캠퍼스 안을 세상의 전부인 듯이 다니던 그 때. 그리고 세상이, 곧 나아갈 사회가 만만하게만 느껴지던 호기로웠던 시절의 맛이었던 김피탕

대학교 때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은 모두 학교를 떠나거나, 혹은 배움을 위해 학교에 더 남아있거나 하며 서로의 삶을 살고 있다. 가끔씩 만나 술 한잔 기울일 때의 안주는 더 이상 김치피자탕수육이 아니었다. 우리는 정말로 어른이 되어버린걸까?

서로의 바쁜 사정으로 혼술이 습관이 되버린 지금, 그때를 생각하며 김피탕을 시켜본다. 몇 번 젓가락질 하면 소스만 남게 되어 소스를 찍어먹으며 술을 마시던 그 때의 음식이 아니었다. 혼자서 먹기엔 양이 많아 남은 것들을 포장하여, 내일 다시 먹겠노라 다짐하며 망각의 냉동실로 밀어 넣는다. 그 때, 그 시절, 마치 어른이 다 된 것처럼 느껴지던 그 부끄러움도 함께.




우리 함께 이 밤을 Cheers! (feat.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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