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의 인생사

<충남대학교성소수자동아리RAVE>

2017-01-04

평범하지 않은듯, 평범한 한 청년의 역사, 인생관, 연애사 

 

1. 나에 대하여

나는 2017년 정유년에 반 오십을 넘어 스물 여섯살이 된 청년이다. 성정체성은 남성이며, 성지향 역시 남성으로,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게이이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달은건 중학교 2학년 무렵이다. 어느 한 순간에 깨닫기 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뚜렷해졌다. 항상 누군가를 좋아했고, 다 남자사람들이었다. 처음 남자를 좋아한다고 느꼈던 것은 초등학교 3학년때 담임 선생님이었지만, 그때는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그저 좋았을뿐. 중학교 들어와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 남자들이고, 바뀌어도 남자만 좋아하는 나 자신을 보고 점점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다. '아, 나는 사람을 좋아하긴 하지만 여자랑 결혼은 못할 운명이구나.'
나는 남자인 친구들보다는 여자인 친구들이 더 많다. 어릴때부터 친구들이 좋아서 환장하는 축구나 체육활동을 나는 싫어서 환장했고, 그 시간에 여자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더 많이하고 놀았다. 그래서인지 수적으로 우세하다. 그러나 여자 친구들 하고는 친하게 지냈지만, 종종 고백을 받아버리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거나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자."라는 말로 거절해왔고, 어색해졌다. 하지만 지금 주변에도 많은 좋은 여자
친구들이 있다. 중고등학교가 다 공학이었고, 친한 여자아이들 덕분에 남자 아이들로부터 "쟤는 여자를 너무 좋아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의심의 꼬투리를 잡히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2. 커밍아웃

지금 내가 성소수자 동아리원을 제외하고 커밍아웃을 한 사람은 15명? 그 쯤 된다. 친구들, 동생들 그리고 사촌 누나까지. 아직 부모님께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에 미루고는 있지만 향후 5년내에 말씀드릴 계획이다. 나의 첫 커밍아웃은 초/중/고/대학교까지 다 같은 학교를 다녔던 절친에게 했다. 정말 친한 여자친구고, 항상 본의 아닌 쉴드를 많이 쳐준 사람이다. 수능이 끝나고 할 말이 있다며 불러서 같이 식사하고 헤어지기 전에 말했다. "나 게이야." 딱 이렇게 4글자 말하고 바로 헤어졌다. 첫 커밍아웃이라 너무 떨리고 긴장했지만 말하는 순간 그냥 후련했다. 친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겁이 나서 바로 헤어졌지만, 아주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전과 다름없이 대하고, 아직까지 잘 연락하고 지낸다. 심지어 지금은 아니지만 내 남자친구랑 다같이 식사한 적도 있다. 항상 남자친구가 생기면 소개해달라고 한다. 나도 남자친구가 생기면 꼭 소개해주고 싶은 친구다.
15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 모두 성공적이었다. 모두 전과 같이 잘 지내고, 담담하게 받아주었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그랬다. 고마운건 나지만. 이럴때보면 내가 참 착하게 살아와서 그렇다고 우기고 싶다!

3. 반려동물과 반려자.

나는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동물을 무척 좋아하고, 현재 반려견을 2대째 키우고 있다. 키운다는 말보다는 같이 살고 있다고 하고싶다. 같이 살면서 느낀게 많지만, 한 줄로 요약하면
"헤어짐을 예상한다면 만날 수 없다."는 것.
불의의 사고 혹은 노화로 인한 죽음을 미리 걱정한다면, 또 그 슬픔을 이겨낼 생각을 미리 하고 있다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시작할 수 없다. 같이 사는 동안, 매 순간마다 서로가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반려동물이 그러하듯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람과 시작하는 단계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먼저 생각하고 걱정하면 시작할 수 없다.
하지만 신중하게. 단순히 외적인 모습과
조건만을 고려한다면 LTR - Long Time Relationship - 을 유지할 수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면도 볼 줄 알아야하고, 함께하는 미래를 생각해야한다.

4. 연애

지금까지 내가 연애라고 규정하는 건 4번이다. 나의 첫 연애는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로, 스무살때다. 가장 아름답게 기억해야할 첫 연애가 지금은 가장 지우고싶은 기억이다. 9살 연상의 형이었고, 3개월정도 만났다. 만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랑이 애초에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애초에 난 그냥 어린 파트너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헤어졌고, 지금 생각해도 너무 분하다!
나는 나름대로의 로망이 있어서 1학년을 마치자마자 해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정말 신기하게도 두번째 연애를 하게 되었다. 동갑인 4달 차이 맞후임이었다. 인터넷도 어플도 없는 그 곳에서, 기적처럼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렸었고 진지하게 연애를 시작했었다. 군대에서 같이 생활한 것을 빼고도 1년정도 전역 후에 동거했다. 같은 가게에서 일하면서 살았고, 내가 워킹홀리데이로 해외에 있을때 후발주자로 늦게 합류해서 6개월간 함께하다가 같이 귀국했다. 그렇게 총 3년을 만나다가 2016년 여름에 헤어졌다. 이렇게 긴 연애는 처음이었다. 서로 자존심도 세고, 자주 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특히 내가 그를 내 기준에 맞추려고 했다. 결국 좁혀지지 않는 한계에 지쳐서, 정도 감정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이별을 고했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에겐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나를 돌아보게 해줘서 고맙기도 하다.
세번째는 작년 여름에 있었다. 나는 대전에 살지만, 방학에 부산에 3주정도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어플을 통한 만남에 기대를 접어버린 상태라 시큰둥했었다. 약속도 미루고 미루다가 만났다. 그리고 후회했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고, '더 일찍 만날걸' 이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장거리 연애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서로 이렇게 좋아하면 가능하겠구나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다. 방학때 서로 시간 맞춰서 여행도 자주가고 잘 지내다가 개강하고 나는 대전의 학교로, 그 친구는 부산의 직장으로 돌아갔다. 만날 기회도 시간도 사정도 많이 줄었고, 결국 나는 교양수업을 듣다가 장문의 카톡으로 차였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얼떨떨했지만, 현실적으로 이 만남은 유지가 어렵다는걸 나도 알았기에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시는 장거리 연애를 하지 않으리라, 비슷한 상황의 또래만 만나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 지금이 네번째 연애로, 진행중이다. 개강 후에 가입한 성소수자 동아리를 통해 알게 된 동갑 친구이다. 동아리에서 내가 면접을 잠시 담당했을때, 내가 면접본 사람이며 여러모로 많이 닮아있었다. 첫 눈에 반하지는 않았다. 또 그 당시에 나는 모든 일에 슬럼프가 왔었던 터라 사람만나는 일도 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유일하게 재미있게 만나고 노는 친구가 그 아이였고,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샌가 좋아하고 있었다. 동아리 사람이라 더 신중했다. 행여나 잘못되어 나때문에 동아리에 피해가 갈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 옆에 있고 싶었고, 내가 그토록 바라던 사람이었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냈고 결국 이루어졌다. 사실 그 친구도 그 무렵 나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고백하던 그날밤의 짜릿함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서로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관계가 되고 싶다.

나의 이상형은 다음과 같았다.

선한 성품을 갖고 있어야하고,
우리뿐만 아니라 자신을 아끼는 사람,
야먕이 있는 남자,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거나 숨기지 않고 사
랑한다고 할 수 있는 사람,
해가 갈수록 더 함께하고 싶은 사람

나는 지금 그런 사람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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